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전통적 이론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이는 전업주부가 아이를 더 많이 낳을 것이란 일반적 사고와도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여성의 사회활동과 출산율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한 것은 최근 한국재정학회 발간 ‘재정학연구’에 실린 ‘OECD 국가들의 합계출산율’ 보고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들에서는 경제활동을 많이 하는 여성일수록 오히려 아이를 더 많이 낳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주요 선진국들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가리킨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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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이들 국가의 1990~2016년 자료를 바탕으로 출산율 결정 요인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 합계출산율이 오히려 유의미한 수준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2000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부터 그 같은 현상이 더욱 뚜렷해졌다. 합계출산율이란 가임여성 한명이 평생 동안 낳은 아이의 평균적인 수를 의미하는 단어다.

종합 정리하자면, 선진화된 국가들에서는 최근 20여년 동안 여성의 경제활동과 출산율의 상관관계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 관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새로운 현상이어서 국가의 보육정책 수립에도 변화가 수반돼야 함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분석 결과는 여성의 평균임금이 높아질수록 출산율도 덩달아 올라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그로 인한 가구 소득 증대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작용을 한데 따른 결과인 듯 보인다.

이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증가하면 할수록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베커 가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베커 가설’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게리 베커의 이름에서 따온 학설이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근로자로서의 몸값이 올라가고, 그 결과 자녀 양육시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늘어나므로 출산 기피 현상이 더 심화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베커는 개개인들의 사회활동과 관련한 현상을 경제학과 연관지어 풀이하는데 공을 들인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출산 및 양육도 효용과 비용의 관계를 통해 풀이했는데, 이를 토대로 고임금 여성은 양육에 투자하는 시간의 경제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보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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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분석 결과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단서는 분석 대상 국가들이 OECD 소속 선진국이라는 점이다. 이들 국가는 대체로 보육복지에서 개도국들보다 앞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증대뿐 아니라 보육복지 강화가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요소임을 말해준다.

보고서에 의하면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가족수당이 급여를 대체하는 비율이 25% 증가할 때 합계출산율이 1% 정도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 동유럽에서는 육아휴직이 일주일 늘어날 때마다 합계출산율이 0.0029명 늘었고, 아시아 지역의 경우 보육서비스 이용률이 25% 증가할 때 합계출산율은 7%까지 늘어났다.

주요 선진국에서도 특히 2000년 이후부터 이 같은 현상들이 뚜렷이 나타났다는 점도 의미심장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최근 20여년 동안 급격히 변화한 사회적 인식이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일과 가사의 양립을 보장하는 제도들을 활발히 개발했고, 남성들은 육아에 대한 역할분담 의식을 새롭게 갖게 됐다.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기존 인식을 허물게 됐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분석 결과를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뒤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고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시장 여건을 확충하는 것이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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