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부동산 공급대책 이후 별다른 추가 조치를 내놓지 않던 정부가 지난달 28일 “집값이 시장 예측보다 더 큰 폭으로 조정될 수 있다. 지금은 불안감에 의한 추격 매수보단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때”라고 권고했다. 이 권고는 ‘앞으로 집값이 크게 떨어지니 현 시점에서 집을 사지 말라’는 사실상의 경고로 해석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등 4개 정부 부처 수장은 이날 부동산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불법·편법거래 및 시장교란행위가 부동산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며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 조기 청약이 이뤄진다는 점, 전문가들의 고점 인식, 금리 인상과 유동성 관리 가능성 등 대내외적 환경 등을 판단해볼 때 주택가격은 일정 부분 조정의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 합동브리핑. []사진 = 연합뉴스
정부 합동브리핑. []사진 = 연합뉴스

정부의 집값 고점 경고의 주요 근거는 주택 공급량과 각종 지표다. 주택 공급이 충분하고 객관적 지표로 볼 때 지금 가격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올해 서울 입주 물량이 8만3000채, 전국 46만채라며 과거 10년 평균치(서울 7만3000채·전국 46만9000채) 대비 절대 모자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각종 지표도 내놨다. 기재부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실질 가격은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5월을 100으로 할 때 2013년 79.6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12월 98.8, 올해 5월 99.5까지 상승했다. KB국민은행이 가구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 집계를 시작한 2008년 12월 서울의 평균 집값은 통계청 기준 3분위(소득 상위 40~60%) 연소득의 11.9배였지만, 지난 3월 17.8배까지 뛰었다. 지난 3월 기준 중위소득 가구가 서울 중간 가격대 집을 사려면 연소득을 17.8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가 밝힌 공급 물량은 크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담화 발표 다음날인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건축된 주택 40만1000채 가운데 아파트는 31만1000채였다. 2015~2019년 5년간 연평균 아파트 공급(39만3200채)보다 20.9%나 적다. 올해 서울 입주물량이 8만채가 넘는다고 말했지만 국토부 주택공급통계정보시스템(HIS)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4만2000채로 그가 밝힌 물량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입주 물량(5만7000채)보다 26.3%나 감소했다.

정부 통계와 체감 공급물량 간의 괴리는 신규 주택을 보는 기준 자체가 다른데서 발생한다. 정부는 아파트나 오피스텔·다세대·연립주택 등 비아파트, 청년주택 등 공공임대주택도 모두 포함해 물량을 산출했다. 그런데 국토부의 올해 서울 입주 물량 예측치 중 절반인 4만1000채는 비아파트다. 다세대나 연립주택도 주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대다수가 선호하는 주택이 아파트라는 점을 고려하면 유형별 물량을 밝히지 않으면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형욱 국토부 장관도 이날 “앞으로 10년간 수도권 31만채의 주택이 해마다 공급돼 분당 등 1기 신도시 건설 물량 29만 채를 넘어서게 된다”고 강조했다. 1기 신도시 공급 주택의 90% 이상은 아파트다. 정부는 대단지 아파트 위주인 1기 신도시 물량과 비아파트가 섞여 있는 현재의 공급 전망치를 단순 비교하며 “충분하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임대주택은 시장에 다시 나오지 않는 공급인 만큼 일반적 주택 공급에 포함시키기 어렵고, 비아파트는 점점 더 선호도가 떨어질 것”이라며 “이를 모두 포함한 물량이 수요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공급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의 경우 택지 지정 실적을 바탕으로 토지 수용과 공사에 걸리는 기간을 감안해 내년 이후 입주 물량을 전망했다. 민간 공급 물량은 과거 준공 실적을 감안해 추세적으로 예측했다. 이는 목표치일 뿐 실제 공급량과는 거리가 먼 통계다. 인허가부터 입주까지는 통상 3∼5년이 걸린다. 현재 서울의 입주 물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은 2015∼2017년 인허가 물량이 대폭 증가한 덕이다. 인허가 이후 취소되거나 착공이 지연되는 사례도 많기 때문에 실제 입주 물량은 인허가에 비해 50∼70%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공공 공급이 암초에 부딪친 것도 공급 전망을 어둡게 한다. 당초 정부는 태릉골프장과 과천청사 부지에 택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상세 계획을 4~5월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혀 8월 중 발표하는 것으로 미뤄진 상태다. 현재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도심 공공개발 역시 아직 지구 지정조차 하지 못한 초기 단계다. 불확실성이 큰 만큼 향후 물량을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주택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상승세를 타고 있는 탓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올 상반기 3.18% 오르며 지난해 연간 상승률(3.01%)을 넘어섰다. 최근 주간 동향의 경우 서울 아파트값은 9주 연속 0.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대국민 담화가 끝난 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별별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안 잡히니 이젠 집 사지 말라고 협박하느냐”는 부정적 반응이 쏟아진 이유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도 “서울 아파트는 죄다 사이버 주택인가요” “지하에다 짓는 거냐…본 적이 없다” “실물을 들이대고나 말하지” “정부가 부동산 사지 말라고 할 때가 적기 매수 타이밍이다. 풀매수 신호다” “앞으로 펼쳐질 부동산 상승장에 부담이 큰 듯하다” 등 비꼬는 내용의 글·댓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이날 치러진 청약 경쟁도 열기가 뜨거웠다. 담화 직후 1순위 청약 접수를 마감한 ‘세종자이더시티’에는 22만842명이 신청서를 냈다. 공급 가구 수가 1106가구로 경쟁률만 무려 199.7대 1을 기록했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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