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현금성 복지, 즉 ‘돈 퍼주기’가 난무하고 있다, 아동수당이나 기초연금 같은 기존 제도는 확대되고 영아수당과 국민취업지원제도처럼 새 사업이 계속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취약 계층에게 주는 복지 사업을 제외하고 굵직한 것만 따지더라도 수혜자는 전 국민의 20%에 이르는 1000만명을 훌쩍 넘는다. 내년에 처음으로 ‘나랏빚 1000조원 시대’(1068조3000억원 예상)가 열리는 판국에 내일은 없고 오늘만 생각하는, 오로지 표심을 겨냥한 현금성 복지 예산을 짜기에 바쁜 까닭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온 의무지출 규모는 올해 279조1000억원(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기준)까지 불어났고 내년에 사상 처음으로 300조원((301조1000억원)을 돌파하게 된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25년에는 342조7000억원으로 불어난다. 현금성 복지 예산은 경직성이 높아 사실상 없애는 것이 불가능한 의무지출에 해당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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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아동수당은 5세 이하 아동에게 매월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 수당이 2018년 처음 도입될 때는 만 6세 미만 아동 중 소득 상위 10%를 제외했다. 그러나 2019년 100% 지급으로 바뀐 뒤 같은 해 9월부터 만 7세 미만으로 기준이 높아졌다. 더욱이 내년에는 아동수당법 개정을 전제로 만 8세 미만 43만명에게 추가로 주기로 했다. 올해 2조2195억원 규모의 예산이 내년에는 8.3% 추가된 2조4039억원으로 증가한다. 대상은 모두 273만명에 이른다. 저출산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수혜자를 늘리자 예산 규모는 내년에 2018년 예산(9500억원)의 2.5배로 불어난다.

지방자치단체 대다수가 주고 있는 출산장려금도 새로 만들었다. 정부는 내년 출생아 27만5000명을 전제로 출산을 했을 때 주는 첫만남이용권(200만원)을 도입하는데 예산 4000억원을 새로 편성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의 지자체가 저출산 대응에 쏟아부은 자체 사업 예산만도 모두 30조원이 넘지만 저출산 상황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이런 데도 중앙정부가 뒤늦게 중복 사업을 신설한 것이다. 1세 미만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영아수당을 신설해 3731억원을 투입하고, 임신바우처는 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지원 금액을 높였다. 영아수당의 경우 2023년 35만원, 2024년 40만원, 2025년 50만원으로 해마다 금액을 늘리기로 했다. ‘돈 먹는 하마’와 같이 만들어 놓고 대상도 끊임없이 넓히고 있는 셈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현금성 지원은 국민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연령을 상향하고 규모를 더 키울 것”이라며 “법적 요건을 갖추면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은 늘어나면 줄일 수 없어 재원 마련 대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존 사업과 유사하면서도 규모를 더 늘린 대선 공약들이 쏟아져 나오는 탓에 재정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구직 활동을 지원하는 현금성 예산도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월 50만 원씩 최대 6개월간 300만원을 나눠주는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경우 구직촉진수당 지원 인원을 40만명에서 50만명으로 확대했다. 예산도 1조2101억원에서 1조5141억원으로 25% 껑충 뛴다. 직업훈련을 희망하는 국민에게 1인당 최대 500만원을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 역시 1조150억원에서 내년에 1조2369억원으로 21.8% 늘어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순수 현금 급여를 지급하면 지원 내용과 성과 간 관계가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어 효과적인 정책 수단인지 면밀히 검토하고 신중히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MZ세대(1980년 초~2000년 초 출생)를 겨냥한 선심성 예산도 눈에 띈다. 연소득 2400만원 이하 저소득 청년을 위해 월 10만원 저축액에 정부가 최대 3배의 지원금을 얹어 3년 후 최대 1440만원을 수령할 수 있는 ‘청년내일 저축계좌’를 도입하고, 청년들의 소득 구간별로 금융상품에 추가 이자나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등 청년 자산형성 지원에만 1조9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군인 자기개발비 단가 인상(10만원→12만원)에 따라 올해 예산이 248억원에서 내년 459억원으로 2배 가까이 확대되고 전역시 최대 1000만원(장병 750만원+정부 25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복귀준비금이 신설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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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 일자리 도약장려금 등도 새로 도입된다. 월세 특별지원은 15만2000명의 무주택 청년에게 월세 20만원을 최대 1년간 한시적으로 지원한다. 가구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이거나 청년의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60% 이하인 경우에 지급된다. 내년부터 2024년까지 시행될 일자리도약 장려금은 중소기업이 청년을 채용하면 기업에 연간 최대 960만원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14만명의 취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국가장학금 지원 단가를 인상해 그 수혜자가 1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청년에 월세를 직접 지원하면 월세 수요가 늘어 임대료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며 “정부가 재정건전성은 생각하지 않고 세금을 지나치게 정략적으로 쓴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월세를 직접 지원하는 사업과는 별도로 월세를 무이자로 정부가 대출해주는 프로그램도 내년에 도입된다. 현행 보증부 월세대출 프로그램은 연소득 2000만원 이하인 만 34세 이하 청년에게 연 1.0%의 낮은 금리로 최대 월 40만원까지 빌려준다. 이번 대책으로 내년엔 연소득 5000만원 이하라면 월 20만원까지 무이자로 빌릴 수 있고 추가적으로 최대 30만원까지 1.0%의 이자로 월세를 충당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현금성 복지 예산 지출은 하방경직성이 큰 만큼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경우 재정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는데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뿐 아니라 공적기금까지 상태가 나빠져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며 “확장해 놓은 재정으로 메우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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