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정부가 8년 만에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하면서 원재료인 전기요금 인상이 제품 및 서비스 전반의 비용부담 상승과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현 추세대로라면 올해 물가안정 목표치(2%) 사수는 물건너간다.

오는 10월 1일부터 적용되는 4분기 전기요금이 인상됐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4분기(10~12월)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kWh당 0.0원으로 책정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3분기(-3원)보다는 3원 오른 것이다. 월 평균 350kWh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전기료는 매달 최대 1050원 오른다. 전기요금 인상은 2013년 11월 이후 8년 만이다. 정부는 앞서 1분기 국제유가 하락세를 감안해 kWh당 3원 인하했으며, 2~3분기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물가상승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을 동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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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여전히 어렵다. 3분기까지는 전기요금을 동결했던 영향으로 8월 소비자물가 통계상 전기요금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4% 저렴했다. 하지만 국제 연료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이 점점 증가했다. 한전에 따르면 발전 연료비로 쓰이는 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BC유 등의 가격은 3분기 내내 올랐다. 관세·개별소비세 등을 더한 연료비 세후 무역통계가격은 유연탄의 경우 ㎏당 141.76원(6월)→158.93원(8월), 같은 기간 LNG는 548.04원→654.72원, BC유는 558.78원→579.78원으로 상승했다. 4분기에도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엄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전 부담만큼이나 소비자들의 물가부담도 크다. 물가상승률은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8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6% 올랐다. 소비자물가는 4월(2.3%)과 5월(2.6%), 6월(2.4%), 7월(2.6%)에 이어 5개월 연속 2%대 중반의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다 전기요금이 인상되면서 물가 고공행진이 추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기는 다른 산업의 중간투입물로 사용되는 만큼 생산품의 가격상승을 부추기는 등 추가적인 물가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한전이 4분기 전기요금을 단위당 3원 인상하면서 올해 전체 물가상승률이 0.0075%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올해 물가관리 목표치는 2.0%이다.

4분기에는 물가를 끌어올릴 ‘인상 요인’이 많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휘발유와 경유값은 전년보다 20.8%, 23.5% 급등했다. 통상 추석이 있는 달에는 소비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5차 재난지원금·11조원 규모), 다음 달 소비분부터 적용되는 상생소비지원금(카드 캐시백·7000억원 규모) 등이 풀려 물가상승 압력이 증가한다. 장바구니 물가도 인상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체감이 큰 농·축·수산물의 가격이 폭염 등의 영향으로 7.8% 올랐고 수요가 많은 달걀은 54.6% 뛰어올랐다. 외식물가(2.8%)를 비롯한 개인서비스 가격도 2.7% 인상됐다.

밀크 인플레이션도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다음 달 1일부터 우유 제품 가격을 평균 5.4% 인상한다고 밝혔다. 남양유업과 매일유업 등 다른 우유업체의 도미노 가격인상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우유를 재료로 하는 빵, 치즈, 버터 등도 줄줄이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서울 종로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현모씨는 “생크림, 라떼나 디저트류를 만들 때 들어가는 바리스타용 우유 도매가도 오를 것 같다”며 “가을 초에는 생크림 등 재료를 구하기도 힘든데 가격까지 오른다니 막막하다”라고 털어놨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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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기요금의 인상은 도시가스 등 다른 공공요금 인상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있다. 도시가스 소비자 요금도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주택용·일반용의 경우 홀수월마다 원료비 변동 요인이 ±3%를 초과하는 경우에만 상업용·발전용은 매월 자동으로 조정한다. 올해 상반기 내내 고공행진을 벌인 국제유가로 인해 원료비가 올랐음에도 정부는 9월 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을 동결했다. 지난해 7월 평균 13.1% 인하한 이후 15개월째 묶여 있다. 도시가스 사용량이 증가하는 겨울철을 앞두고 요금을 올리는 것은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인상요인이 수개월째 누적된 만큼 더는 인위적으로 요금을 억제할 수 없을 거라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교통요금도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2011년 2.93% 인상 이후 10년간 동결된 철도운임의 인상과 공익서비스의무(PSO) 보상 현실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도 고속도로 통행료 인상을 건의할 방침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2015년 4.7% 인상한 뒤 6년째 동결됐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대중교통 요금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서울은 교통카드 기준 기본요금이 지하철은 1250원, 시내버스는 1200원으로 6년째 묶여 있다. 대전도 시내버스 요금이 1250원으로 6년째 동결됐다. 인천과 울산은 2015년 이후, 대구는 2016년 이후 시내버스 요금이 동결됐다. 상하수도 요금, 쓰레기 종량제 봉투 가격도 꿈틀거린다. 서울과 강릉은 지난 7월분부터 상하수도 요금을 올렸고 제주는 내년 1월부터 상수도 요금은 평균 5%, 하수도 요금은 평균 20% 올리기로 했다. 인천은 9개 군·구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기획재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인상 압력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10월 가스요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물가안정법)에 따르면 공공요금 기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재부는 산업부와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동시에 인상하는 것은 공공요금에 대한 국민들의 부담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며 ”10월 가스요금을 동결하는 등 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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