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받아내기 힘든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등 국세 체납액이 해마다 10조원씩 늘어나며 1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세 체납액 공식 집계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세청이 지난달 29일 내놓은 ‘3차 국세통계수시공개’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국세 누계체납액은 98조7367억원이다. 누계체납액은 국세징수권의 소멸시효(5억원 이상은 10년, 5억원 미만은 5년)에 이르지 않은 세금 연체액이다. 독촉이나 압류 절차가 진행되는 기간은 소멸시효를 따지는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 만큼 2011년 6월 이전 체납액 일부도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국세 체납액은 1년에 10조원 꼴로 늘어난 셈이다.

체납액은 독촉이나 재산압류 등 방식으로 징수 절차가 진행 중인 ‘정리중 체납액’과 체납자의 소득이나 재산이 없거나 체납자가 행방불명돼 받아내기 힘든 ‘정리보류 체납액’을 합한 것이다. 누계체납액 98조7367억원 가운데 정리중 체납액이 9조9406억원, 정리보류 체납액은 88조7961억원이다. 정부가 사실상 받아낼 수 없는 국세가 사실상 90%(89.9%)인 셈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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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체납 규모가 큰 세목은 ‘부가가치세’다. 체납된 부가가치세는 36.6%인 26조6124억원에 이른다. 다음으로는 소득세 21조8892억원(30.1%), 양도소득세 11조8470억원(16.3%), 법인세 8조4959억원(11.7%) 등의 순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기업부터 영세 자영업자까지 모든 사업자가 납부해야 하는 부가세는 징수 대상이 넓다보니 체납액도 많다”고 설명했다.

체납액 대부분은 10억원 이상 세금이 밀린 ‘고액체납자’ 몫이다. 전체 체납 인원 가운데 체납액이 10억원 이상인 경우는 1만3658명(1.1%)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체납액은 누계체납액의 44%인 43조6713억원이다. 10억원 이상 체납자 1명 당 평균 체납액은 32억원에 이르고, 한명 당 평균 체납 건수 역시 10.4건으로 가장 많다. 100억원 이상 초고액(상습) 체납자 25명의 체납액만 6946억원이다. 1명 당 평균 278억원 꼴이다.

체납액이 많은 관서는 서울 서초세무서로 무려 2조3657억원에 이른다. 서울 강남세무서가 2조3178억원, 경기 안산세무서(2조2169억원), 서울 삼성세무서(2조1023억원), 서울 역삼세무서(2조947억원) 등의 순으로 많다. 상위 5개 세무서 중 4곳이 강남권이다. 반면 경북 영덕세무서가 554억원으로 가장 적다.

국세청은 지금까지 체납액 규모를 보여주는 ‘정리중 체납액’만 공개해왔다. 이번에 처음으로 ‘정리보류 체납액’을 합해 누계체납액 규모를 공개했다. 국세청은 정리보류 체납액의 경우 전산관리로 전환한 뒤 앞으로 체납자의 소득·재산 변동내역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재산이 발견되면 강제징수를 다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리보류된 체납액도 체납자의 소득을 전산으로 수시로 확인하는 등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국세청이 징수를 포기했다는 뜻은 아니고 행정력의 한계를 감안해 집중 관리 대상인 정리중 체납액과 구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이를 위해 독촉과 재산 조사, 재산 압류, 압류 재산 매각 등의 절차를 통해 채납세금 강제징수를 진행하고 있다. 제3자 명의로 재산을 숨긴 것으로 의심되는 체납자에 대해서는 은닉 재산을 추적해 소송을 걸고 현금과 채권을 확보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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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사업장을 둔 사업가 A의 경우 2014∼2015년 실물거래 없이 세금계산서만 있는 가공거래로 세금을 탈루한 것이 확인돼 국세청이 2017년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수십억원을 부과했다. A가 세금을 1원도 내지 않자 국세청은 독촉장을 보냈으나 A는 독촉기한까지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국세청은 2017년 5월 A 명의의 아파트를 압류하고 공매를 의뢰했다. 그해 8월에는 금융재산조회를 통해 보장성 보험을 압류했다. 보장성 보험 계약은 그대로 유지해 A가 보험금을 타면 이를 바로 압류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2018년 3월에는 공매 의뢰된 A의 아파트가 팔려 국세청은 체납액 중 수억원을 충당했지만 남은 체납액은 ‘정리보류 체납액’으로 분류하고 전산 관리하기로 했다. 2018년 5월에 신용정보기관에 A의 체납자료를 제공함으로써 A는 신용등급에 타격을 받게 됐다. 2019년 12월에는 A를 고액체납자 명단공개 대상에 올려 인적사항과 체납액을 공개했다. A는 현재 신용불량자 상태로 사업장도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악의적인 고액 체납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현장 수색과 고발, 소송 제기 등을 통해 징수실적을 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부모로부터 재산과 창업자금 등을 변칙적으로 제공받고 세금 신고를 누락한 446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부모의 조력으로 고가 재산을 편법 취득하고 사업체 운영 등 경제활동 기반까지 지원받은 혐의자 155명 ▲부동산 취득 과정에서 증여를 은닉하거나 고액의 채무를 부모가 대신 변제한 72명 ▲변칙 자본거래를 이용해 편법 증여를 받은 197명 등이다. 고액 금전을 증여받고 소득 신고를 누락한 프리랜서 등 22명도 조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국세청은 조사 대상 중 매출을 누락하거나 기업자금을 부당하게 유출해 재산을 증식한 혐의가 확인되는 경우 관련 사업체도 조사할 방침이다. 부모로부터 사업체 운영을 지원받은 경우에서는 부모가 매출을 누락하거나 명의 위장, 차명계좌 등 불법행위를 이용해 소득을 은닉한 뒤 자녀에게 편법 증여하고 운영자금까지 지원한 사례가 확인됐다. 박재형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하는 주택 변칙증여 등 부동산 탈세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자력 없는 연소자의 재산 취득에 대해서는 검증 범위를 확대하는 등 대응 수준을 높였다”며 “앞으로도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엄정 대응하고 연소자 검증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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