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갭투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깡통전세’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갭투자를 통해 매입한 주택들은 부동산 경기가 하락할 때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의 합이 집값보다 낮아지는 깡통전세로 전락할 우려가 큰 만큼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자금조달계획서상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보증금을 합산한 금액이 집값의 100%를 넘어서는 신고서는 2020년(3~12월) 7571건에서 2021년(8월까지) 1만 9429건으로 2.5배 이상 급증했다. 집값의 80% 이상인 신고서 역시 2020년 3만6067건에서 2021년 8만511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자금조달계획서는 주택구입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그 출처를 적어 제출하는 문서다. 정부가 2017년 주택 투기 조사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도입했다. 이어 지난해 3월부터 조정대상지역에서는 3억원 이상의 주택을 구입할 때, 투기과열 지구에서는 9억원 초과 주택을 구입할 때 계획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투기과열·조정대상 지역의 모든 주택을 구입할 때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규제가 대폭 강화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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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전세의 가장 큰 문제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세입자가 계속해 구해지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집주인이 주택을 판다고 하더라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 집주인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가는 경우에는 전세보증금을 다 되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보통 세입자들의 경우 은행보다 변제 순서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들은 많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주택이 경매로 넘겨져 세입자가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한 사례는 1만2745건이나 된다. 금액으로는 4614억3409만원 규모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919억8261만원(2948건) ▲2017년 621억4856만원(1919건) ▲2018년 602억8258만원(1738건) ▲2019년 730억1018만원(2092건) ▲2020년 1050억5859만원(2455건) ▲2021년 7월 말 현재까지 689억5157만원(1593건) 등이다.

깡통전세는 아파트보다 빌라에서 더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출과 보증금 합이 집값의 80% 이상인 아파트가 1.8배 증가한데 비해 빌라는 3.3배 증가했다. 100% 이상의 경우 빌라는 3.5배가 증가해 그 폭이 가장 컸다. 빌라의 깡통전세 급증은 부동산 대출규제 등으로 적은 돈으로 보다 손쉽게 매매할 수 있는 빌라로 투기성 자본이 모여들었음을 보여준다. 장경태 의원은 “내 돈 1원도 안 들이고 구매하는 주택이 늘어나는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라며 “세입자에게 깊은 절망을 안겨줄 수 있는 깡통전세는 반드시 근절돼야 하며, 이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깡통전세가 급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정부가 지난해 7·10 대책에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주택에 대해 취득세 중과 예외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는 결국 갭투자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창원과 천안, 강원도 등 지방 저가 아파트로 다주택자 '원정 쇼핑'이 유행처럼 확산됐다. 이들 갭투자의 대부분은 한 채당 1000만~3000만원의 소액으로 이뤄졌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9~2021년 8월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를 10가구 이상 사들인 개인과 법인은 모두 1470명에 이른다. 법인의 경우 1000채 이상 사들인 사례가 3건이다. 최고 1978채를 매수한 법인도 있다. 개인은 269채, 265채를 사들인 사례가 나왔다. 특히 7·10 대책 이후 올해 8월까지 14개월 간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는 모두 26만555건 거래돼 직전 14개월의 16만8130건보다 55% 증가했다. 시중에 유동성이 대거 풀리면서 다주택자들이 '단타거래'를 통해 수백만원, 수천만원 차익만 나도 투기적인 거래를 한 것이다.

이들에게는 아파트 수백채를 사들여도 '취득세 1%'만 내도 되는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가 최고의 투자처로 자리잡았다. 내야 할 세금을 줄일수록 투자수익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방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시세 2억원 전후의 아파트를 작게는 1000만~5000만원만 내고 '갭투자'를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털어놨다. 세입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수하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수십채 아파트를 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 269채를 사들인 다주택자의 경우 시세 2억원을 곱해 모두 538억원이 필요하지만 실제론 2000만원 갭투자를 했다면 54억 정도면 매입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황이 이런 만큼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가 부동산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외지인들이 공시가격 1억원 아파트를 사들이면서 현지에서 살아야 하는 주민들은 당장 주택 가격이 올라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대로 집값 하락이 시작될 때 ‘묻지마 투자’를 했던 개인들이 저가 아파트 매물을 먼저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며 “집값 하락이 가속화하면서 지방발 부동산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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