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세입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전셋값이 급등하고 대출한도가 쪼그라든 상황에서 정부의 가계부채 총량 관리 방침에 따라 은행권이 주택담보대출을 줄인데 이어 전세대출마저 옥죄기 시작하면서 무주택 서민들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은행권에 올해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을 5∼6% 이내로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올들어서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자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의지를 재차 밝혔지만 증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지난 7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4416억원에 이른다. 연말까지 아직 3개월 가까이 남았는데도 지난해 12월 말(670조1539억원)보다 4.97% 늘어난 수치다. 당국이 제시한 증가율 목표치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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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별로는 NH농협은행이 7.14%(135조3581억원)로 가장 높고, 하나은행(5.23%·131조9115억원)이 뒤를 이었다. 가계대출 규모 1위 KB국민은행(5.06%·170조402억원)도 5%를 넘어섰고 우리은행(4.24%·135조8842억원)도 이달 말이나 다음 달 5%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나마 신한은행(3.16%·130조2476억원)만 조금 여유가 있다. 특히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포함)은 5.09%(473조7849억원→497조8958억원)가 불어났고, 전세대출은 9개월여 만에 105조2127억원에서 121조7112억원으로 15.68%나 껑충 뛰었다. 올해 증가한 가계대출(33조2877억원) 가운데 절반이 전세대출이라는 얘기다.

이에 농협은행은 지난 8월 부동산 신규대출을 오는 11월 말까지 전면 중단했고 수협은행도 이달부터 신규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관리 여파는 인터넷은행까지 확산됐다. 카카오뱅크는 고신용자 신용대출, 직장인 사잇돌대출 등의 신규대출을 연말까지 중단했다. 지난 5일 출범한 토스뱅크도 이미 올해 대출총량(5000억원)의 60%를 소진한 만큼 대출이 곧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은행권은 전세자금 대출에 대해 문턱을 높이고 나섰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 전세자금 대출을 ‘전셋값(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한데 이어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이 5%를 넘어서자 이달부터 아예 영업점별로 대출한도를 정해놓고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전셋값이 4억원에서 6억원으로 2억원 오른 경우 그동안 전세자금 대출이 없는 세입자는 전셋값의 80%인 4억8000만원까지 대출해 주던 것을 이제는 증액분인 최대 2억원까지만 대출해주고 있다. 하나은행은 같은 조치를 오는 15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어려울 경우 은행들은 연말쯤 아예 신규대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신한은행만 증가율이 다소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다른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조이면 ‘풍선효과’로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아파트값, 전셋값 상승으로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 대출수요는 기본적으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마당에 정부가 대출규제를 강화하고 은행권이 대출을 강하게 조이거나 중단하면 무주택 서민들은 저축은행이나 카드회사, 대부업체, 불법 사금융 시장 등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른바 ‘대출난민’이 현실화할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포털 부동산 관련 카페에는 “전세대출 규제를 재고할 달라”고 호소하는 글들이 대거 올라오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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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정부는 가계부채 추가 대책에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중순쯤 전세대출 규제를 포함한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주 국회 국정감사에서 “10월 중순 중 (가계부채 추가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실수요자 대출도 상환 능력 범위 내에서 가능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고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최근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이 전세대출로 지목되는 만큼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대출 규제로는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거나 ‘부분 분할상환 방식’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DSR은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합계가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다.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6억원이 넘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으면 은행에선 40%(제2금융권 60%)의 DSR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전세대출은 그동안 전셋값(임차보증금)의 80%까지 받을 수 있었으나 DSR이 적용되면 소득에 따라 ‘버는 만큼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분할상환 방식이 적용되면 매달 이자와 함께 원금도 갚아나가야 해 대출금 상환 부담이 커진다.

전세대출 규제 강화 소식에 전세 계약을 서두르는 임차인이 늘어나면서 추석 연휴 기간 한풀 꺾였던 전셋값 상승세도 다시 강해지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서 10월 첫째 주 수도권 전셋값은 0.24% 올라 전주(0.21%)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서울이 0.19% 올라 지난주와 같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경기는 지난주 0.24%에서 이번 주 0.28%로, 인천은 0.27%에서 0.30%로 각각 상승 폭이 확대됐다.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드는 것도 ‘악재’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하반기 서울의 입주 물량은 1만3141가구로 상반기보다 25.9% 감소했다. 내년 입주 물량도 2만463가구로, 올해보다 33.7% 줄어든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입주물량 감소 등 공급 위축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앞으로도 전세난 심화가 우려된다”며 “특히 내년 7∼8월이면 새 임대차법 시행 2년을 맞아 계약갱신 만료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서 전셋값 추가 상승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한 정책 당국의 대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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