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델타 변이 확산과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중국의 전력대란 등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포’가 지속되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생산자물가가 25년 만에 가장 많이 올랐고, ‘세계의 소비시장’인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13년 만의 최고점을 찍었다. 주요 2개국(G2) 물가가 5개월째 급등하는 동조화 현상을 보이며 불확실성이 커지는 바람에 세계 경제에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7% 상승했다. 1995년 12월 11.1%를 기록한 후 25년9개월 만의 최고치다. 9월 PPI 상승률은 8월(9.5%) 수치를 1.2%포인트나 웃돌았다. 중국의 PPI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확산 여파로 하락하다 올해 1월 0.3% 오르며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후 매달 오름폭이 커지더니 5월부터 9% 안팎의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원유·석탄·철광석·구리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게 가장 큰 악재로 작용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임대료 인상에 항의하고 있는 대학생들. [사진 = EPA/연합뉴스]
터키 이스탄불에서 임대료 인상에 항의하고 있는 대학생들. [사진 = EPA/연합뉴스]

특히 전력대란에 따른 향후 전기요금 현실화로 중국의 PPI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는 전력대란에 대응해 이달 15일부터 석탄화력 전기요금을 정부가 정하는 기준가에서 상하 20%까지 변동할 수 있도록 바꿨다. 기존 10%에서 변동폭을 늘려 발전업체들이 석탄 가격 상승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톈펑(天風)증권은 전기료 인상으로 PPI가 1%포인트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PPI 급등은 중국의 수출을 고리로 전 세계 물가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글로벌 인플레가 임박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PPI 상승세도 두드러진다. 미국의 9월 PPI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8.6% 올랐다. 연간 상승률을 조사하기 시작한 2010년 11월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존 월드런 골드만삭스 대표는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인해 이미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진 상태”라며 “단기적인 경제 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역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4% 상승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CPI는 5개월째 5% 넘게 오르고 있다. 미국 CPI 상승을 견인해온 중고차 가격과 항공료는 전달보다 0.7%, 6.4% 떨어졌고 의류(-1.1%), 호텔숙박료(-0.6%)도 하락했지만, 9월 CPI는 오히려 1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에너지 가격의 급격한 오름세 등이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9월 에너지 가격은 전달보다 1.3% 상승했다. 난방용으로 쓰는 연료유(3.9%)와 가스(2.7%) 가격이 많이 뛰었다. 더욱이 한 번 오르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임대료마저 뛰고 있다. 지난달 세입자 임대료는 전달보다 0.5% 상승했는데, 이는 20년 만에 최고치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물가가 크게 뛰고 있는 것은 오랜 기간 지속해 온 통화완화 정책에 코로나 델타 변이 확산과 에너지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난 등 여러 악재가 겹친 탓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해 3월 금리를 0.00~0.25%로 인하한 뒤 지금까지 ‘제로(0)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피하기 위해 국채 매입 등을 통해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었다. 아직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조치를 시행하지 않아 시중에는 돈이 넘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기지가 있는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여전히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생산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중국에 전력대란까지 겹치며 제품 생산과 배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탓에 물류대란 조짐마저 보인다.

미국 뉴욕의 채소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시민들. [사진 = 신화/연합뉴스]
미국 뉴욕의 채소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시민들. [사진 = 신화/연합뉴스]

국제유가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지난주 15일 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 서부텍사스원유(WTI) 11월 인도분 선물은 배럴당 82.28달러를 기록했다. 2014년 10월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다. 석탄·천연가스 값도 줄줄이 인상되고 있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더해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이 가해진 여파로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연일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만큼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세계 경제가 물가 상승과 경기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미 경제매체 CNBC와 인터뷰에서 “공급망 병목현상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1970년대에 목격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연상시킨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은 보고서를 통해 내년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 6%에서 5.9%로 하향 조정하면서 인플레 위험을 경고했다. 국제 유가·원자재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인플레가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IMF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선진국 2.8%, 개도국 및 신흥국 5.5%로 전망하며 “물가상승률은 올해 말 고점을 찍고 내년 중반에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말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진다는 관측이다. 골드만삭스도 올해 미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7%에서 5.6%로 하향 조정했다. 그러면서 인플레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들로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선진국을 거론하며 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통제가 불가능한 인플레 상황에 대응해 긴축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글로벌 인플레를 대비한 긴축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미 연준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인플레 우려가 커지자 연준은 테이퍼링 시작 시점을 오는 11월로 잡고 있다. 문제는 금리다. 연준은 빨라도 내년 하반기는 돼야 금리인상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의 에너지 가격 강세와 공급 불안, 물가 상승세가 내년까지 지속될 경우 연준도 긴축에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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