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비불평등을 가속화한 ‘주범’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올해에는 고소득층의 ‘펜트업 소비’(pent-up·억눌렸던 소비가 분출하는 보복소비)가 나타났지만 저소득층의 소득여건 부진이 지속되면서 소비불평등 정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우리나라의 소비불평등 추정 및 주요 특징 분석’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사태 충격이 작용한 지난해 정부지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소비불평등은 2019년보다 커졌다”고 밝혔다. 한은 조사통계월보에 실린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저소득층(소득 하위 20%)과 고소득층(소득 상위 20%)의 연간 소비액을 비교해 ‘소비 5분위 배율’을 추정한 결과 3.74배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는 코로나19 사태 발생 이전인 2019년 3.67배와 비교해 0.07포인트나 상승했다. 소비불평등 현상이 그만큼 심화됐다는 얘기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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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불평등은 소득계층별 소비수준의 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 가계의 소비는 소득과 자산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소비불평등은 종합적인 불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된다. 그러나 소비불평등 지표는 그동안 고소득층이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소비액을 실제보다 적게 보고하는 경향이 많았던 까닭에 오차가 크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가계동향조사의 총소비 지출자료를 직접 이용하고 재화별·소득분위별 소비액을 활용해 측정 오차를 보정했다. 그 결과 1990~2016년 소비 5분위 배율은 2.94배에서 3.60배로 대폭 상승한 것으로 판명됐다. 측정 오차를 보정하기 전 수치는 같은 기간 3.01배에서 3.14배로 올라가는데 그쳤다. 오차를 제거하자 소비불평등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것이다. 보고서는 “체감 소비불평등 정도가 기존의 연구결과 등을 통해 알려진 수준보다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소비불평등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추세다. 소비 5분위 배율이 1990년엔 2.94배였으나 2016년엔 3.60배로 0.66포인트 상승했다. 이 기간 중 초기에 해당하는 1990년~2002년까진 소비 5분위 배율에 그다지 변화가 없었으나 2002~2009년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평균 0.6포인트 확대되다가 2009~2016년엔 0.01포인트 축소되며 불평등의 정도가 다소 완화되는 듯했다. 당시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간의 소비불평등이 심화된 이유는 교육과 교통, 음식·숙박, 오락문화, 의류 등 ‘선택소비재’ 때문이었다.

선택소비재(소득이 1 늘어남에 따라 소비가 1을 초과해 증가하는 소비탄력성이 1보다 큰 재화)는 소득이 늘어나고 줄어듦에 따라 사용액 증감 정도가 큰 재화를 말한다. 선택소비재는 오락·엔터테인먼트와 의류·신발, 가사서비스, 교통, 교육, 음식·숙박 등의 항목이다. 이 가운데 교육비 지출격차가 유독 컸다. 보고서는 “소득계층 간 교육비 지출격차가 확대되면서 교육비의 기여율이 뚜렷하게 상승했다”며 “교육비 지출격차의 확대는 빈곤 가구의 교육기회 제약 등에 따라 경제적 계층 이동성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인적자본 축적을 저하시켜 잠재성장률 하락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소득불평등이 또 다시 확대되고 있다. 소비격차의 주원인은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다. 지난해 기준 저소득층 소득은 2019년보다 12% 하락했는데, 고소득층 소득의 경우 0.6% 줄어드는데 그쳤다. 이 때문에 소비 5분위 배율은 2019년 3.67배에서 2020년 3.74배로 0.07포인트 급등했다. 2019년 고소득층 소비가 저소득층의 3.67배였다면 2020년에는 3.74배로 고소득층 소비가 더 늘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외출이 제한되자 자동차와 가구, 가전 등 내구재와 식료품, 통신, 보건 등 필수소비재(소득 증감에 영향을 덜 받는 필수 재화)에서 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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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우 한은 물가연구팀 과장은 “같은 식료품 지출이라도 저소득층은 봉지커피 등 (저렴한 식재료나 식품을) 이용하는 반면 고소득층은 고급 와인, 유기농 채소 등 고급 식재료를 사용하면서 소비격차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필수소비재보다 선택소비재의 사용액이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엔 필수소비재는 전년보다 1500조원이 증가했으나 선택소비재는 4400조원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로 인해 지난해 선택소비재의 소비불평등 기여율은 전년보다 2.8%포인트 상승한 반면 필수소비재의 기여율은 2.8%포인트 하락했다. 고·저소득층 간 소비불평등 현상을 가장 많이 확대시켰던 교육 부문은 불평등 기여도가 2.8%포인트 하락한 덕분에 소비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학원수업 중단 등의 조치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더라도 소비불평등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소득층의 소비가 점차 증가하는 반면 저소득층의 소득여건은 부진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2020년 소비불평등이 전년보다 0.07포인트 오른 3.74배를 나타낸 데 이어 올해에는 3.76배로 전년보다 0.0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한은은 “고소득층의 펜트업 소비가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고용여건 개선 지연 등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여건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에 주로 기인한다”며 “이와 함께 코로나19 기간 중 부진했던 중산층의 소비가 개선되면서 중산층과 저소득층 간의 소비 격차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향후 재정수지 부담 등으로 정부의 소득지원정책이 점차 축소되면서 소득격차가 커지고, 이에 따라 소비격차도 심화될 우려가 있다”며 “특히 취약계층의 고용확대 등 소득여건 개선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소비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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