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들이 경제회복에 힘입어 코로나19 사태 관련 정부지출을 앞다퉈 줄이며 내년도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있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확장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예산 감축에 소극적인 데다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복지부문 지출은 오히려 늘리는 바람에 재정 건전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재정준칙을 법제화한 미국과 독일, 프랑스의 내년도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그 규모가 올해 결산 추정액보다 평균 14.8% 축소했다고 최근 밝혔다. 미국 -17.1%, 독일은 -19.1%로 예산 삭감폭이 비교적 컸고 프랑스는 -8.1%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내년도 예산안 규모는 올해 결산 추정액에 비해 0.1% 줄어드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년도 정부 지출 규모는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15배 늘어났다. 미국(1.10배), 독일(1.07배), 프랑스(1.01배) 등과 비교할 때 증가 폭이 가장 두드러졌다. 재정준칙은 재정 건전성 지표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규범이다. 국내에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아직 법제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2022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2022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사진 = 연합뉴스]

미국은 내년도 예산이 6조111억 달러(약 7087조원)로 편성돼 올해 결산 추정액(7조2495억 달러)보다 무려 1조2384억 달러나 줄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시적으로 지급됐던 연방 특별실업수당이 지난 9월 말 종료되면서 내년 소득지원 예산은 51.6% 축소됐다. 코로나19로 급증했던 소상공인 지원 예산도 올해 4040억 달러에서 내년 384억 달러로 90.5%나 줄었다.

독일은 올해 결산 추정액(5477억 유로)보다 1047억 유로 축소한 4430억 유로(약 601조1600억원)를 내년 예산으로 책정했다. 비상장·소기업 재정지원 예산이 83.1% 축소돼 전체 예산 삭감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사회보장 관련 지출도 66.1% 감소했다. 프랑스 역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피해구제 예산을 올해 369억 유로에서 2억 유로로 무려 99.5% 삭감하는 등 내년도 예산(4546억 유로) 규모를 올해 결산 추정액(4948억 유로)보다 402억 유로 감축했다.

반면 인구 5200만의 우리나라 내년도 예산안 규모는 604조4000억원으로 올해 결산 추정액(604조9000억원)보다 겨우 5000억원(0.1%) 줄었다. 인구 8300만의 독일보다 3조원 이상 많아 예산 규모가 방만하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내년 예산이 올해 수준으로 유지된 가운데 내년 사회복지 예산은 74조 원으로 올해 지출(72조 원)보다 3% 가까이(2.8%) 늘었다. 내년도 정부지출 규모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과 비교했을 때 한국이 비교 대상국 중 가장 크게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9년에 비해 2022년 정부 지출(중앙+지방) 규모가 1.15배 늘어나 미국(1.10배), 독일(1.07배), 프랑스(1.01배)를 크게 웃돌았다. 더욱이 정부의 중기 재정지출 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이후에도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어서 재정 정상화가 불투명하다.

세계 주요국들은 내년부터 코로나19 관련 지출을 대폭 축소하며 예산 감축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오히려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복지지출을 늘리고 있어 국가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세계 주요국이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해 확대 집행했던 재정지출을 대폭 줄인 것은 2022년 경제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 세계 주요 국가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019년 수준을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내년 중 경제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그동안 위기대응을 위해 확대 집행했던 재정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 정부의 중기 재정지출계획 상 내년 이후에도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가 유지되면서 재정 정상화가 불투명하다”고 한국경제연구원은 지적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우리 상황이 이런 만큼 중장기적인 재정건전화 방안의 일환으로 국내서도 재정준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독일·프랑스 등 주요국들은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시행하고 있어 코로나19 회복국면에서 정부가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경기회복 국면에서는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동안 확대 집행했던 정부 지출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재정준칙 법제화 등 재정건전성 제고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학계에서도 내년도 예산 규모가 향후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달 29~30일 열린 재정학회 추계 정기학술대회에서 전문가들은 국가부채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을 내놓았다. 김성순 단국대 교수는 “국가부채는 단기적으로는 성장에 긍정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가장 큰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미래 세대로의 경제부담 전가와 성장잠재력 훼손 등 부작용을 유의하면서 재정을 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25일 열린 재정 관련 통합 세미나에서도 박형수 전 조세재정연구원장은 “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재정 정상화가 이뤄진 과거 위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 종식 후에도 만성적인 재정악화에 시달릴 수 있다”며 “지금이라도 재정 건전성 훼손을 방어하기 위해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한도를 법으로 규정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원식 전 재정학회장도 “내년도 예산 604조4000억원 중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216조7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재정적자 기여도도 31%로 매우 높다”며 “오랜 기간 사회보장·교육 지출이 늘고 경제 분야 지출이 줄면서 재정지출의 비효율이 커졌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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