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추가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한 한국은행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찬물’을 끼얹었다. 가계부채가 많이 불어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경제성장률만 낮출 뿐 물가상승과 부채증가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한 한은이 추가 인상을 통해 긴축에 속도를 내려는 움직임에 제동을 건 것이다.

KDI는 지난 4일 발표한 ‘민간부채 국면별 금리인상의 거시경제적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금리인상이 경기회복을 저해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DI는 금융위기나 최근 코로나19 위기 등으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경제성장률)보다 민간부채가 더 빠르게 확대되는 ‘고(高)부채 국면’과 그렇지 않은 ‘저(低)부채 국면’을 나눠 22년간(1999년 2분기~2021년 1분기) 금리인상의 영향을 분석했다. 올해 2분기(6월말) 기준 민간부채는 GDP 대비 218.2%에 이른다. 가계부채가 1805조9000억원이고 기업부채는 2219조6000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6%, 8.1% 각각 증가했다. 2%대 초반인 우리나라 잠재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증가율이다. 이로써 KDI는 현재를 고부채 국면으로 판단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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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기준금리가 25bp(0.25%포인트) 인상되는 경우 고부채 국면에서는 3분기(9개월)에 걸쳐 성장률을 0.15%포인트, 저부채 국면에서는 0.08%포인트 낮추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 고부채 국면과 저부채 국면 간에 최대 2배의 차이가 나는 셈이다. 반면 물가와 부채증가율은 통계적 유의성이 미미했다. KDI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은 저부채 국면, 고부채 국면 모두 기준선인 0% 부근을 유지했다. 부채증가율도 저부채 국면에서는 중간값이 기준선(0%) 부근을 유지했다. 고부채 국면에서도 0.1%포인트 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연구를 주도한 천소라 KDI 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2000년대 이후 물가와 경기 간의 관계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금리인상이 부채증가율에 미치는 영향도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큰 만큼 통계적 유의성을 찾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이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했다. 미국만 봐도 갭(차이)이 있는 상태”라며 “너무 빠르게 올릴 경우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특히 코로나19발 위기가 경제주체별로 다른 충격을 준 만큼 금리인상은 취약계층의 채무부담을 늘리는 결과만 낳을 수 있다. 민간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불안을 줄이기 위한 정책대응은 필요하지만 가파른 금리인상은 우려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민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금융불안 완화에 더욱 직접적인 효과를 내는 거시건전성정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KDI는 주문했다. 거시건전성정책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을 동원한 민간대출 규제를 뜻한다.

KDI의 분석은 가계부채 증가와 높은 물가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한은의 분석과는 정면 배치된다. 한은은 지난 9월에 발간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높이면 물가상승률과 가계부채 증가율이 각각 0.04%포인트, 0.4%포인트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석을 놓고 금리인상 명분을 축적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은에 따르면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빚을 낸 사람 1인당 연간 이자부담은 15만7000원 늘어난다. 이 중 주택 관련 대출이자 부담이 연간 15만3000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역별 1인당 주택관련 대출 이자부담액은 서울 18만8000원, 부산 16만2000원, 인천 15만4000원, 대구 15만9000원 등이 늘어나지만, 향후 부동산 등 자산가격 오름세에 대한 기대감이 클 경우 금리가 올라 이자를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빌려 집을 산다는 것이다.

한은은 지난 8월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은 경기회복세와 자산 버블(거품) 확대, 물가상승 압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연내 추가 금리인상(11월 유력)을 단행하고 내년 초에도 추가 금리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는 미국의 기준금리(0.00∼0.25%)보다 0.5∼0.7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가 내년 초까지 0.5%포인트를 더 올리면 격차는 1.0∼1.25%로 커진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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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과 KDI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들 기관의 성향 탓이 크다. 물가안정을 정책 목표로 삼은 중앙은행은 ‘매파’(통화긴축 선호)에, KDI는 성장에 무게를 두는 정부를 대변하는 까닭에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에 가깝다. 이런 만큼 충돌도 처음은 아니다. 의견 대립은 2014년 KDI 원장을 지낸 김중수 전 한은 총재 자리를 이주열 총재가 넘겨받은 뒤부터 본격화됐다. ‘전관예우’ 차원에서 김 전 총재 시절에는 잠잠했던 KDI가 이 총재가 들어서자 포문을 열었다.

KDI는 2014년 11월 정책세미나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내놓으며 “현 상황에서 금리를 추가로 낮출 여지가 있고, 좀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은은 이를 무시하고 12월에 만장일치로 금리를 동결했다. 당시 이 총재는 “KDI가 내년 성장률을 3.5%, 근원물가 상승률을 2.0%로 전망했는데 이를 디플레라고 할 수는 없다”며 “디플레가 우려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2018년 11월 금리인상을 시사한 한은에 대해 KDI는 “내수경기가 둔화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현재 수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2019년 11월에도 한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KDI가 분석을 내놓을 때마다 한은 관계자들은 “‘월권이다”거나 “트집을 잡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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