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년 만에 소비자물가지수의 구성 품목과 가중치를 개편했다. 현 상황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통계 품목을 개편했지만, 치솟은 집값과 전·월세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여전히 소비자 체감 물가와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은 지난 22일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품목을 중심으로 소비자물가지수 체계를 개편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1965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통계청 전신)이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5년 단위로 소비자물가지수 체계를 개편해 왔다. 이정현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내년 1월 발표되는 올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 발표부터 물가지수 산정을 위한 기준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하고, 5년 간 바뀐 소비 트렌드를 감안해 조사 품목도 변경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번 물가지수 개편으로 지난해 가계동향 조사에서 한 달에 256원(전체 월평균 소비지출액 1만분의1) 이상인 14개 품목은 추가됐고 256원 미만인 13개 품목이 탈락했다. 이에 따라 물가지수에 반영되는 전체 대표품목 수는 현행 460개(2015년 기준)에서 458개(2020년 기준)로 2개 줄어든데 비해, 조사규격(조사대상 상품)은 1049개로 50개 늘어났다. 물가산정 대상으로 추가된 품목은 새우와 체리, 망고, 아보카도, 파인애플, 기타 육류가공품, 마스크, 식기세척기, 반창고, 의류건조기, 유산균, 전기자동차, 선글라스, 쌀국수 등 모두 14개다. 피아노와 현악기는 악기로,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는 시외버스로 통합하는 등 11개 품목은 5개 품목으로 통합된다. 즉석식품은 즉석식품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나누는 등 3개 품목이 6개로 세분화된다.

반면 2015년 기준에 포함됐던 넥타이와 연탄, 비데, 교과서, 고등학교 납입금, 학교 급식비, 사진기, 정장제, 프린터, 스키장 대여료, 남녀 학생복, 의복 대여료 등 모두 13개 품목은 제외했다.

넥타이는 사무직 등 화이트칼라 남성 직장인을 ‘넥타이부대’라고 부를 정도로 직장인 패션의 대명사였지만, 2010년대 초반부터 넥타이를 매지 않는 가벼운 정장 차림을 의미하는 ‘비즈니스 캐주얼’이 유행하면서 넥타이 소비 빈도가 대폭 감소하는 바람에 조사대상에서 탈락했다. 1970~80년대까지 월동 준비라고 하면 김장과 연탄 들여놓기가 꼽힐 정도로 겨울철 가정 필수품이었던 연탄도 도시가스에 밀려 소비가 크게 줄어들면서 빠졌다.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의 사진촬영 기능이 좋아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사진기 역시 물가지수 대표품목 자리를 내주게 됐다. 올해부터 전면 무상보급된 교과서와 고등학교 납입금은 실효성이 없는 만큼 더 이상 물가 동향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 대상에 넣지 않기로 했다.

통계청은 앞서 5년 전인 2016년 12월 소비자 물가동향 조사부터 블루베리와 파프리카, 파스타면, 가글(구강청결제), 휴대전화 수리비 등 18개 품목을 추가하고 사전과 잡지, 꽁치 등 10개 품목을 제외한 바 있다. 천소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등 기술 진보와 비대면 소비 증가 같은 트렌드 변화가 빨라지면서 물가지수 조사대상 품목은 앞으로 더욱 빠른 속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며 “기술 변화가 빠르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요가 높은 점을 감안하면 품목 조정 주기를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품목별 가중치는 2~3년 단위로 조정한다. 2018년 12월 물가지수 조사 때부터 1000 중 48.9였던 전세 가중치는 3년 만에 54로 5.1포인트 높였지만, 월세는 44.8에서 0.5포인트 낮춘 44.3으로 오히려 가중치가 줄어 월세 거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 역행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통계청은 “지난 3년간 전세가 늘고 월세가 줄어든 추세를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 시청이 늘어나는 등 인터넷 콘텐츠 이용이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해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 가중치도 3년 전(4.5)의 2배에 가까운 8.8로 높였다. 입원 진료비(3.0)와 외래 진료비(2.9), 건강기능식품(2.3)의 가중치도 높였다. 이에 반해 해외 단체 여행비의 가중치는 2017년 13.8에서 2.4로 11.4포인트나 줄여 감소폭이 가장 크다. 휴대전화 이용료(-4.9)와 중학생 학원비(-3.1), 점퍼(-2.9), 휘발유(-2.3)의 가중치도 각각 낮췄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통계청은 “물가지수 개편 이전에는 2021년 1~11월 물가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번 개편 내용을 적용하니 물가상승률은 2.4%로 0.1%포인트 높아졌다”면서 “넥타이, 연탄이 빠지고 마스크, 의류건조기 등이 추가된 새 물가지수 체계를 적용해 2020년 1월 이후 물가 통계를 통계청 홈페이지에 올려 놓았다”고 강조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상승률이 0.1%포인트 높아진 것은 무상이어서 물가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던 고등학교 납입금, 학교 급식비가 없어진 것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번 개편이 2026년 물가지수 산정까지 적용되는 만큼 향후 5년간의 소비 트렌드 변화는 소비자 물가지수에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다. 특히 생활필수품 중 가장 가격이 비싼 주택 구입을 반영하지 않아 논란이다. 최근 5년 새 집값이 폭등하면서 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달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미국과 같이 자가주거비 항목을 포함하고, 우리나라 특유의 관리물가 항목을 제외한 뒤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면 물가 오름세는 지금보다 상당폭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위원도 “자가주거비 항목의 경우 우리나라도 미국과 같이 소비자 물가지수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통계청은 집값 상승을 소비자 물가지수에 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윤선 경제동향통계 심의관은 “집값은 건물 서비스 자체보다는 (소재지역 등) 입지요소 차이에 많이 기인한다”며 “이런 만큼 집 자체는 소비지출 대상이 아니라 자본재로 보고 있고, 그렇기에 집값을 온전하게 소비자 물가지수에 포함시키는 경우는 (해외 사례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