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대장주로 꼽히는 크래프톤이 지난해에 이어 새해 들어서도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5일 연속 내림세를 타며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40만원선이 붕괴된 것이다. 지난해 8월 기업공개(IPO·상장) 당시 공모가의 4분의 1이나 허공에 날려 투자자들의 한숨소리만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0일 크래프톤 주가는 전날보다 3.3% 떨어진 38만1500원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날 장중 한때 37만3000원까지 곤두박질치며 공모가(49만8000원)보다 무려 25% 이상 급락했다.

크래프톤 주가 하락엔 미국의 금리인상 시그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처하기 위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공격적으로 긴축에 나설 뜻을 밝혀 기술 성장주가 직격탄을 맞고 있는 탓이다. 이에 당황한 외국인과 기관들이 쌍끌이 매도에 나서면서 주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크래프톤이 배급한 '배틀그라운드'. [이미지 = 크래프톤 제공]
크래프톤이 배급한 '배틀그라운드'.

연준은 2020년 3월 이후 기준금리를 ‘제로(0)’로 유지해왔으나 이를 접고 2년 만에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그 시점과 속도 또한 앞당기기로 했다. 특히 시장에 풀린 돈을 직접 회수하는 방안인 ‘양적긴축’(QT·Quantitative Tightening·대차대조표 축소)까지 검토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연준은 지난 5일 공개한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서 “인플레이션과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일찍 또는 더 빠르게 금리를 올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회의 참석자들이 첫 번째 금리 인상 후 어느 시점에서 대차대조표(보유자산) 축소를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오는 3월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급증하고 있는 공매도(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해당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주식을 빌려서 판 뒤 결제일(3일)이 돌아오기 전에 다시 사서 메우는 투자전략) 역시 크래프톤의 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 달 전인 작년 12월 7일 기준 크래프톤의 공매도 잔고는 4252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1개월 만에 공매도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5일 기준 7141억원 수준으로 불어났다. 이달 들어서만 6일까지 4일 동안 578억원의 공매도를 맞았다. 크래프톤은 그동안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 부담이 컸던 종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크래프톤 주가 부진이 예견된 사태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크래프톤은 상장 전부터 ‘공모가 거품’ 논란에 시달려왔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을 때부터 “공모가가 높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공모가 산정 근거를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당시 크래프톤은 게임·콘텐츠 기업 7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인 45.2배를 적용, 35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산출했다. 그런데 7개 기업 중 크래프톤과 비교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회사가 다수라는 비판이 있었다.

더욱이 디즈니(PER 88배), 워너뮤직그룹(PER 38배), EA(PER 133배)를 비교 기업군에 넣은 것은 PER을 부풀리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크래프톤과 3개 회사는 사업 분야·규모 등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디즈니는 마블시리즈 등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세계적 콘텐츠 회사다. 사업 분야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와 영화, 테마파크 등 다양하다. 워너뮤직그룹은 음반 매출이 85%가 넘는 ‘음악’ 회사다. 두 기업 모두 게임이 주력인 크래프톤과는 사업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게임회사인 EA 역시 크래프톤을 압도한다. ‘피파’ ‘배틀필드’ ‘심즈’ 등 인기게임 IP를 대거 보유하고 있고 플랫폼 사업 ‘오리진’도 별도 운영한다. 매출 대부분을 배틀그라운드 게임 하나에 의존하는 크래프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나마 크래프톤과 매출 규모, 사업 구조가 비슷한 기업은 넥슨(PER 12배)이다. 넥슨보다 4배 가까이 높은 PER을 산정해 크래프톤 주식은 ‘비싸다’는 인식이 각인됐다.

주식물량을 떠받쳐줄 기관투자자의 자금부족도 주가 부진에 한몫했다. 전년에 비해 IPO 대어가 급증해 기관들이 동원할 수 있는 돈이 감소했다. 크래프톤 수요예측에 참여한 자산운용사의 한 관계자는 “2020년에는 대어급 종목이 3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SK바이오사이언스, SK IET, SD바이오센서, 카카오뱅크 등 대어급 종목이 4개나 상장됐다”며 “이 때문에 크래프톤 수요예측 때는 중소형 기관투자자들의 자금동원력이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기관투자자들의 대규모 매도를 막아주던 ‘의무보유확약’도 머지않아 끝이 난다. 의무보유확약은 상장기업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한 주주가 특정기간 동안 그 주식을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한 제도다. 크래프톤 공모 청약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의 3개월 보호예수 물량이 지난해 11월 10일 해제됐다. 이후 6개월 보호예수 물량까지 차례로 풀릴 예정이다. 자금 확보에 나선 기관들이 주식을 매도하면 주가는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9월 10일 크래프톤 1개월 보호예수(222만주) 물량이 해제됐을 때도 주가가 급락했다. 당시 4일 전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해 보호예수 해제 당일까지 모두 12.2% 떨어졌다.

그러나 크래프톤 실적만은 견고하다. 금융투자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컨센서스에 따르면 크래프톤의 2021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매출은 2조8063억원으로 전년보다 24.6%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업이익은 8566억원으로 전년보다 10.7%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기존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매출 장기화로 이익 기반이 안정화된 가운데 뉴스테이트 출시로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이 예상된다”며 “배그 세계관이 확장된 신작들의 출시로 IP의 가치도 강화되는 만큼 경쟁사보다 가치 프리미엄 부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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