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가계대출 금리가 상호금융의 대출금리보다 높은 ‘이상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은행권이 대출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가산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바람에 시중은행의 대출금리가 지역 농·축협과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보다 높은 ‘금리역전’이 이뤄진 것이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상호금융권의 가계대출 가중평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연 3.42%로 은행권(연 3.61%)보다 0.19%포인트 낮다. 같은 해 10월 은행권 금리가 0.11%포인트 높았던 점을 고려할 때 격차가 더 벌어졌다. 지난해 1월까지만 해도 은행권 대출금리(2.83%)가 상호금융권(3.16%)보다 ‘정상적으로’ 더 낮았으나, 같은 해 10월 대출금리 역전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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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창 한은 경제통계국 금융통계 팀장은 “시중은행은 당국의 대출 총량규제를 맞추기 위해 우대금리를 축소하고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린 데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비싼 중·저신용자 대출확대로 중금리 대출취급이 늘어나 상승폭이 크게 나타났다”며 “상호금융 등은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규제강도가 덜해 대출금리 인상속도가 느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금금리 역시 은행권이 상호금융권보다 높아졌다. 지난해 10월 상호금융권 예금금리(1년)는 1.34%로 은행권(1.46%)보다 0.12%포인트 낮았고, 11월에는 격차가 0.31%포인트(상호금융권 1.41%, 은행권 1.72%)로 더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제1금융권인 은행이 가장 안전한 금융사인 만큼 이자가 제일 싸다고 알려졌지만, 이 같은 금융상식마저 파괴된 셈이다.

특히 일반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 금리보다 역전 정도가 더 크다. 신용대출 금리 역전은 일찌감치 지난해 2월(은행 3.61%, 상호금융 3.57%)부터 시작됐다. 이후 8월까지는 격차가 0.1~0.2%포인트 안팎에서 맴돌았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9월부터 본격적으로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금리역전 격차가 급속히 벌어졌다. 그 격차는 지난해 9월 0.31%포인트, 10월 0.62%포인트로 각각 집계됐다. 12월에는 1%포인트 이상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용대출의 경우 금리역전 현상이 2019년 5월에도 잠깐 나타난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격차가 커진 것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해 9월까지 은행권과 상호금융권이 각각 3.01%, 3.05%로 ‘통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은행 3.26%, 상호금융이 3.22%로 시중은행이 0.04%포인트 높은 역전현상이 일어났다. 11월엔 격차가 0.20%포인트(은행 3.51%, 상호금융 3.31%)로 더 커졌다. 주택담보대출의 금리역전은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후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두 권역 모두에서 금리 오름세가 보였지만 은행권의 상승폭이 더 컸다. 더군다나 지난해 11월엔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가 5.16%로 상호금융권(연 4.17%)보다 0.99%포인트 더 높았다. 통상적으로 은행은 신용등급이나 재정 안전성에서 규모가 협소한 상호금융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채권을 포함한 조달금리가 낮으니 대출원가도 저렴해 이자도 당연히 상호금융보다 낮다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율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가산금리를 올리고 우대금리를 축소하며 대출금리를 급격히 올렸다. 실제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대출금리에 붙는 가산금리는 지난해 11월 3.1%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상호금융은 우대금리를 유지하거나 더 늘렸고 은행권보다 대출한도에 여력도 있었다. 상호금융 가계대출 증가율(목표치 4.1%)은 지난해 8월까지만 해도 2% 안팎이었다.

은행권의 강도 높은 대출 관리에 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해 상호금융권의 대출수요는 급증했다. 지난해 10월 상호금융권 가계대출 규모는 341조원으로 연초(310조원)보다 9.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 가계대출 규모는 856조원에서 907조원으로 5.9%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20년에는 은행 가계대출 증가율(10.6%)이 상호금융권(9.7%)보다 높았는데, 추세가 뒤집어진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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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고신용자들이 제1금융권을 주로 이용하고 중·저신용자들이 제2금융권을 찾는다는 점에서 대출금리 역전 현상은 자칫 대출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실물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뜩이나 금리인상으로 대출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는 마당에 전세 수요 등으로 대출을 한 실수요자들의 대출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대출이자 부담에 고신용자들이 소비를 줄이게 되면 실물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 금통위원은 “최근 가계대출 금리상승이 상대적으로 고신용층에서 크게 나타나고, 은행금리가 비은행 금리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며 “이 같은 특징들은 시장원리에 비춰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이로 인해 가계대출의 질적 개선이 다소 저해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은행권과 상호금융권 간의 금리역전 현상이 올해에도 지속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가 4~5%(지난해 5~6%)로 강화되는 등 금리역전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지만 상호금융에 대한 대출규제 역시 강화되고 은행권도 대출금리를 낮추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송재창 팀장은 “최근 시중은행들이 우대금리를 올리는 등 대출금리를 낮추고 있고, 비은행에 대한 대출 규제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은행과 비은행 간 대출 격차가 다시 벌어질 수는 있다”면서도 “비은행은 대출총량 관리를 위해 은행만큼 강하게 대출금리를 규제하지 않고 있고 특히 상호금융은 조합원 위주로 대출을 하고 있어 대출금리를 올리는 게 쉽지 않은 만큼, 은행보다 대출금리가 낮게 유지될 가능성도 높지만 좀 더 분위기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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