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맥주 시장이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수입맥주 부동의 1위였던 일본 맥주가 코로나19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아 편의점 등에서 자취를 감추자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글로벌 맥주들이 총력전을 펼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14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맥주의 수입량은 2020년보다 7.2% 감소한 25만7932t, 수입액 역시 전년보다 1.7% 떨어진 2억2310만 달러(약 2760억원)로 각각 집계됐다. 수입량과 수입액이 3년 연속 내림세를 탔다. 코로나19와 일본제품 불매운동, ‘4캔에 1만원’ 공식이 깨진 것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덜란드 맥주가 2020년 중국 맥주를 제치고 왕좌에 오른 이후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 맥주의 수입액은 지난해 4343만 달러로 2018년(2141만 달러)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다음은 중국 맥주(3675만 달러), 벨기에 맥주(2762만 달러), 폴란드 맥주(2011만 달러), 미국 맥주(1845만 달러) 등의 순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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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 맥주의 지난해 수입액은 688만 달러로 불매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2018년보다 91.2%나 곤두박질쳤다. 나라별 맥주수입 순위에서도 일본은 2018년 1위에서 지난해 9위로 수직하락했다. 일본 맥주 수입액은 2018년 7830만 달러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9년 3975만 달러로 급감한 데 이어 2020년 567만 달러로 더욱 쪼그라들었다.

이에 따라 일본 맥주가 군림하던 편의점 수입맥주 판매 순위도 불꽃 튀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한 대형 편의점에 따르면 2018년 판매 1위를 달리던 아사히는 2019년 5위로 떨어진 뒤 2020년 이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18년 나란히 ‘톱10’에 이름을 올렸던 기린이치방과 삿포로도 순위권에서 사라졌다. 2019년부터 시작된 불매운동 여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격인상까지 단행한 것이 치명타로 작용했다.

아사히가 내놓은 1위 자리를 놓고선 네덜란드 맥주 하이네켄과 중국 맥주 칭다오(TSINGTAO)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이네켄이 1위를 차지했지만 올해 초에는 칭다오가 선두를 되찾았다. 주류업계에선 하이네켄과 칭다오의 점유율 격차를 1~2%포인트로 보고 있다. 이들 두 맥주를 뒤이어 프랑스 맥주 크로넨버그1664블랑, 미국 맥주 버드와이저,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루투아와 호가든 등이 상위권에서 치열한 순위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입맥주를 유통하는 국내 주류업체는 희비가 엇갈린다. 하이트진로는 주력 제품이었던 기린이치방이 불매운동 여파로 고꾸라졌지만 크로넨버그1664블랑과 덴마크 맥주 서머스비, 독일 맥주 파울라너 등이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을 회복했다. 오비맥주는 스텔라와 호가든에 이어 버드와이저 판매량이 크게 늘어난 데 대해 안도했다. 이에 비해 롯데아사히주류는 아사히 맥주가 몰락하는 바람에 2018년 1248억원에 이르던 매출액이 2020년 173억원으로 급감했다.

수입맥주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든 것은 소비자들의 취향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라거 맥주를 선호하던 소비자 입맛이 맛과 향이 강한 에일 맥주로 옮겨간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수입맥주 시장은 2018년 3억968만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해마다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맥주 수입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 줄어든 2억2310만 달러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수제맥주뿐만 아니라 와인과 위스키 시장이 성장하면서 수입맥주로 향하던 수요가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취향이 다양한 젊은 층이 수제맥주, 와인 등을 선호해 수입맥주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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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제맥주는 가격 경쟁력이 부쩍 상승했다. 기존에 국내 수제맥주는 ‘4캔 1만원 행사’에서 볼 수 없었다. 개별 캔을 4000원 안팎의 가격에 구매해야 하고 프로모션(판촉활동)에서도 제외되니 수입맥주에 비해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매우 불리했다. 하지만 맥주의 주재료인 맥아와 홉, 알루미늄 등 원·부자재 가격이 오르고 물류비용이 치솟는 바람에 수입맥주 중심으로 편의점에서 할인판매됐던 ‘4캔에 1만원’ 공식이 깨졌다. 지난해 12월 하이네켄코리아가 하이네켄과 에델바이스, 타이거 등 대표 제품 4캔으로 구성된 묶음 가격을 1만원에서 1만1000원으로 올린 것이 그 시작이었다. 같은 달에 호가든, 버드와이저, 스텔라 아르투아, 1664블랑 등도 행사가격을 올렸다. 수입맥주의 가격적인 매력이 사라지자 수제맥주로 눈길을 돌리는 소비자가 늘면서 수입맥주 시장이 하락세를 걷게 된 것이다.

 여기에다 2020년 1월부터 세금체계가 종가세(제조단가에 매기는 세금)에서 종량세(생산량 기준)로 바뀌어 세금부담이 줄어들면서 원가가 낮아졌고 프로모션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맥주의 원가에 세금이 매겨지던 종가세 체제 아래서는 대량생산으로 원가를 낮추는 대기업 맥주에 비해 생산원가가 높은 수제맥주가 불리했다. 하지만 어느 맥주에나 ℓ당 세금이 고르게 매겨지는 종량세로 바뀌면서 수제맥주의 가격의 20~30% 인하가 가능해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쳐 국내 수제맥주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지난해 국내 맥주시장은 수제맥주와 수입맥주가 5:5로 분할됐다. 주류업계는 올해 국내 수제맥주의 인기가 수입맥주를 크게 앞지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CU가 2020년 5월 선보인 ‘곰표 밀맥주’는 지난해 10월까지 누적 판매량 2500만개를 넘겼다. 지난해 CU의 수제맥주 매출은 전년보다 255% 급증했다. GS가 2018년 선보인 ‘광화문’은 지난해 기준 누적 판매량 1300만개를 기록했다. 이 업체의 수제맥주 판매량은 전년보다 234.1% 증가했다. 지난해 세븐일레븐 수제맥주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20% 이상 성장했고 품목수도 지난해보다 2배 늘어 20종 이상이 팔리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2018년 633억원에서 2020년 1180억원으로 86% 늘어났고, 내년까지 3700억원대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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