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 금리인하에 나섰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대출수요가 꺾이자 금리인하 전략을 통해 고객확보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달 11일부터 우대금리를 주는 방식으로 0.1%포인트 대출금리를 낮췄다. ‘원더랜드 금리우대 쿠폰 사용등록 고객’에게 0.1%포인트 우대금리를 제공한다. 원더랜드는 우리은행이 출시한 부동산금융 특화 어플리케이션(앱)이다. 대상은 주택·주거용 오피스텔 담보대출과 우리전세론이며, 신규대출시 적용 가능하다.

신한은행은 앞서 8일부터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최대 0.28%포인트 인하했다. 이날 기준 신한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는 3.43~4.48%, 고정금리(금융채 5년)는 4.25~5.08%로 전날 3.63~4.68%, 4.53~5.36%에서 각각 0.2%포인트, 0.28%포인트 낮아졌다. 앱 등 비대면 대출금리는 0.1%포인트 낮아진다. 3가지 전세자금 대출상품(주택금융공사·서울보증·주택도시보증)을 이용하면서 금융채 2년물 기준의 고정금리를 선택해도 0.25%포인트 낮은 금리를 적용받는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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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은 이와 함께 전세자금대출에 0.1%포인트의 장애인 우대금리도 신설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서민들의 주거부담 완화와 금융비용 경감, 상품경쟁력 강화에 따른 영업동력 활성화를 고려해 금리인하를 결정했다”며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전세대출의 고정금리(2년물 금리)를 0.25%포인트 낮춰 세입자들의 불안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도 지난 8일부터 우대금리를 적용해 사실상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대 0.3%포인트 내렸다. 이날 기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코픽스)는 3.18~4.38%, 고정금리(금융채 5년)는 4.95~6.15%다. 전날 기준으로는 3.48~4.38%, 5.21~6.11%였다. 적용되는 우대금리는 △주택청약종합저축 우대금리 0.1% △급여이체 우대금리 0.1% △카드이용실적 우대금리 0.1% 등이다.

KB국민은행은 5일부터 주택담보대출 및 전세대출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 낮췄다. KB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금리) 상품의 금리는 0.45%포인트, 변동형 상품은 0.15%포인트 인하했다. KB전세금안심대출(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 상품 금리는 0.55%포인트 내렸다. KB주택전세자금대출(한국주택금융공사 보증) 금리는 0.25%포인트 낮췄다. 이달부터 주력 신용상품 대출인 ‘하나원큐신용대출’ 가산금리를 0.2%포인트 내린 하나은행은 현재 추가적인 대출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대출금리를 낮추고 있는 것은 실적에서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꼽히는 가계대출 자산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바람에 대출수요가 위축됐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급등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상단은 7일 기준 연 6.24%를 기록했다. 연 6%대(6.01%)를 넘긴 지난달 29일 이후 일주일 만에 0.23%p나 치솟은 것이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도 5.947%에서 6.019%로 오르면서 6%대를 돌파했다. 신한은행은 5.15%에서 5.36%로 올랐다. 이들 은행의 하단 금리 역시 4.1~4.64%에서 4.33~4.71%로 상승했다. 반면 5일부터 한 달 동안 혼합형 주담대 금리를 0.45%포인트 내리기로 한 KB국민은행의 경우 4.00~5.50%에서 3.74~5.24%로 하락했다. 이 때문에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03조1937억원으로 2월 말보다 2조7436억원 감소했다. 1월 이후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새 정부 눈치보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예대금리차 공시제도’ 도입 공약이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 간 금리차) 공시제도는 말 그대로 예대금리차를 주기적으로 공시하는 제도다. 은행 입장에서는 주기적으로 예대금리차가 공개되는 까닭에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대금리차가 커졌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예금은행의 대출잔액 기준 예대마진은 2.27%포인트로 2019년 6월(2.28%포인트)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인하 움직임을 그동안 대출금리를 크게 올린데 대한 ‘생색내기용’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택담보대출 상품만 따져보면 지난 6개월간 평균금리가 1%포인트 이상 올랐다. 대출금리가 소폭 낮아졌지만 소비자들의 이자부담은 이미 크게 늘어나 있다는 의미다.

은행연합회에 공시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평균 주택담보대출(분할상환 기준) 금리는 지난달 기준 4.098%다. 불과 반년 전인 지난해 9월에는 2.97%로 3%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간 의류가격을 40% 가까이 올려놓은 백화점이 할인행사를 한다며 ‘10% 세일’이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호들갑 떠는 것이나 다름없다. 5대 시중은행에서 가계대출 잔액은 매달 1조원 이상 줄어들다 지난달에는 감소폭이 2조7000억원을 넘어섰다. 모두 합치면 올 들어 석 달 동안 6조원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고정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6%를 넘기면서 대출수요 자체가 현저히 감소한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정금리 정책금융 상품인 적격대출에 대출자들이 몰리고 있다. 일반 주택담보대출은 줄어들고 있지만 고정형 3%대 금리를 자랑하는 ‘적격대출’ 정책금융상품은 완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농협은행이 지난 4일 2분기 적격대출 판매를 시작한 지 불과 이틀 만에 300억원 한도가 동났다. 주요 시중은행 중에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배정된 물량이 각각 2500억원과 1000억원으로 농협은행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다. 적격대출은 주택가격 9억원 이하 등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5억원까지 최장 40년간 빌릴 수 있는 정책모기지상품이다. 은행별, 분기별로 한도가 정해져 있다 보니 수요가 조기에 몰리면서 한도가 일찍 소진되기 일쑤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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