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5월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 스텝‘(Big step)을 예고했다. 연준 의장이 구체적으로 시기와 인상 폭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의 공포 속에 세계 주요 증시가 일제히 요동쳤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얼마 전 미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주최 국제경제 포럼에서 금리인상과 관련해 “좀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다”며 “5월 0.5%포인트 인상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3~4일 열리는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파월 의장이 ‘빅 스텝’ 논의를 예고한 것은 처음이며, 연준이 빅 스텝을 단행한 것은 2000년 5월이 마지막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파월 의장이 ‘빅 스텝’을 시사한 것은 지난달 연준이 3년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미국의 물가상승세를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 등으로 41년 만의 최고치인 8.5%로 연준 목표치인 2%를 4배 이상 넘어섰다. 그는 “물가가 3월에 최고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알 수 없다”며 “우리는 진짜로 금리를 올릴 작정이고 중립금리가 될 때까지 매우 빠르게 인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립금리’는 경제성장을 촉진하지도, 위축하지도 않는 수준의 금리. 현재 미국의 중립금리는 2%대 초반인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시장에서는 연내 세 번의 빅스텝 가능성을 보고 있다”는 질문에 파월 의장은 “시장은 우리가 보는 대로 접근하고 있다”고 답했다. 세 차례 빅스텝이 있을 수 있다고 공식 밝힌 것이다. 연말까지 남은 6차례 금리결정 회의에서 세 번의 빅 스텝과 세 번의 베이비 스텝(Baby step·0.25%포인트) 인상이 진행된다면 미 기준금리는 2.25%포인트나 치솟는다. 현재 0.25~0.5%에서 2.5~2.75% 수준이 된다.

파월 의장은 빅스텝 카드만 언급한 것이 아니다. 그가 “초반 큰 폭의 금리인상을 뜻하는 ‘선취방식’(front-end loading)에 대한 얘기가 있다”고 언급함에 따라 당장 5~7월 회의에서 3연속 빅 스텝 가능성도 커졌다. 초반에 0.5%포인트씩 큰 폭으로 인상한 후 경제상황과 지표에 따라 유연한 행보를 취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금리인상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의 페드워치에 따르면 파월 의장의 발언이 공개된 직후 연준이 5월 빅 스텝에 이어 6월에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단행할 가능성은 74.2%로 껑충 뛰었다. 1주일 전보다 45%포인트 이상 높아진 수치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앞서 빅 스텝을 넘어 자이언트 스텝을 제시한 바 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초저금리에 익숙해진 시장은 충격을 받게 된다.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국채 등 채권금리와 대출금리가 연쇄적으로 오르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이 커지면서 경기회복이 둔화될 공산이 크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연준이 1980년대 초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렸을 때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고 실업률은 10%를 넘어설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파월 의장은 별도의 콘퍼런스에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을 또 다시 소환했다. 그는 “볼커는 두 가지와 싸워야 했다”며 “하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용(龍)이며, 다른 하나는 인플레가 지속적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이는 경기침체 가능성을 감수하고 볼커처럼 통화긴축 행보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파월 의장은 지난 3월 금리인상에 앞서 미 의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볼커를 훌륭한 관료라고 추켜세웠다.

볼커는 1970년대 말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연준 의장으로 취임해 불과 1년 3개월 사이(1979년 9월~1980년 12월) 금리를 12.2%에서 22%로 10%포인트 가까이 높이는 가혹한 긴축을 단행해 ‘인플레 파이터’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경기침체로 수많은 회사가 파산하고 직장인들은 길거리로 내쫓겼다. 2m가 넘는 거구인 그는 당시 신변위협을 느껴 권총을 차고 다니면서도 긴축행보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인플레와 산업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미국을 장기 호황의 길로 이끌었다.

미국과 함께 유럽도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3월 물가상승률이 7.4%까지 치솟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통계가 작성된 1997년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함으로써 유럽중앙은행(ECB)이 6년간의 ‘제로(0%) 금리’에서 벗어나 금리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루이스 데긴도스 ECB 부총재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6월 통화정책회의 때 나올 경제전망 수정 시나리오와 데이터를 보고 결정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선 7월 인상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연말쯤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ECB의 기존 입장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13일 금리를 각각 22년 만에 0.5%포인트 인상했다. 우리나라 시장 일각에서는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처음 주재하는 다음 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각국의 금리인상 행보는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초저금리의 힘으로 상승해온 글로벌 증시엔 초대형 악재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나온 날 미 다우존스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05%,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48% 하락했다. 같은 날인 지난 22일 한국 코스피 종합지수는 23.50포인트(0.86%) 하락한 2704.71를 기록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 역시 1.63% 하락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0.1원 상승(원화가치 하락)한 1239.1원에 마감했다. 장중 한때 1245.4원까지 치솟으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