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로 올라섰다. 2005년부터 줄곧 3위였던 SK가 반도체 매출증가 등에 힘입어 현대차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가상자산 사업자로는 처음으로 자산총액 10조원을 돌파하며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22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현황’에 따르면 SK그룹은 자산총액이 1년 전보다 52조4390억원 늘어난 291조9690억원을 기록하며 현대차(257조8450억원)를 가볍게 따돌렸다. 2005년 재계 3위에 오른 지 17년 만에 2위로 도약한 것이다. 삼성그룹은 자산총액 483조9190억원으로 부동의 1위다. 이어 LG(167조5010억원), 롯데(121조5890억원), 포스코(96조3490억원), 한화(80조3880억원), GS(76조8040억원), 현대중공업(75조3020억원), NH농협(66조9620억원) 순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SK의 자산총액은 반도체 매출 증가와 물적분할에 따른 신규 계열사 설립, 석유사업 성장 등에 힘입어 급증했다. 반도체 매출이 크게 늘어난 데다 인텔의 낸드사업부 인수로 SK하이닉스 영업·투자자산이 20조9000억원 불었다. 물적분할 측면에선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사업을 담당하던 SK온, 석유개발사업 담당이었던 SK어스온이 떨어져 나갔고, SK케미칼에서 전력·스팀 등 공급사업을 맡았던 SK멀티유틸리티가 분할 설립되면서 자산이 7조9000억원 증가했다. 석유사업 분야에선 영업환경 개선으로 매출이 늘어나면서 SK이노베이션과 산하 자회사들 자산이 6조2000억원 증가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상장(2조90000억원)됐고 신재생에너지·건설 등 계열사 자산도 14조5000억원 늘어났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등 차세대 성장동력에 대한 집중 투자, ESG 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 중심 사업모델 전환 등도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1일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76개 그룹을 대기업집단으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47개 그룹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른 공시의무가 생기고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행위 등이 금지된다. 상호출자제한집단은 여기에 더해 상호출자·순환출자·채무보증 등이 금지되며 공정위로부터 더욱 엄격한 감시를 받는다.

올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기업 중 공시대상기업집단은 모두 76곳이다. 지난해(71곳)보다 5곳 늘었다. 새로 지정된 곳은 두나무와 크래프톤, 보성, KG, 일진, OK금융그룹, 신영, 농심 등 8곳이다. 제외된 곳은 IMM인베스트먼트와 한국투자금융, 대우건설 등 3곳이다.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올해부터 사모펀드(PEF) 전업 집단, 금융·보험사와 PEF 관련 회사만으로 구성된 그룹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하기로 한데 따른 것이다. 대우건설은 인수·합병(M&A)으로 중흥건설에 흡수됐다.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47개 대기업집단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지난해보다 7곳 늘었고 소속회사 수는 366곳 증가했다. 신규로 지정된 곳은 중흥건설과 업황 개선으로 큰 폭의 이익을 낸 HMM, 태영, OCI, 두나무, 세아, 한국타이어, 이랜드 등 8곳이다. 탈락한 곳은 한국투자금융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가상화폐 사업자가 대기업집단에 처음 포함된 점도 눈길을 끈다. 두나무는 자산총액 10조원을 넘겨 공시대상기업집단 및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암호화폐 열풍으로 사업이익과 현금성 자산이 큰 폭 늘어난 덕분이다. 두나무의 2022년 기준 자산총액은 10조8225억원이며 이중 5조8120억원이 가입자 예치금이다. 통상적으로 금융회사나 보험사의 경우 대기업집단 기준은 고객예치금을 뺀 자본총액으로 따진다. 다만 두나무는 현행법상 금융회사가 아니다. 두나무는 한국표준산업분류상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자산 매매 및 중개업’을 하는 곳으로 분류돼 자산 중 가입자 예치금을 제외할 근거가 없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고객예치금을 자산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서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회계기준을 검토한 결과 고객예치금은 자산으로 편입하는 게 맞다고 판정했다. 이에 따라 두나무의 자산은 10조원을 넘어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해운·건설·정보기술(IT) 주력집단도 크게 성장했다. 국적해운사 HMM 자산총액은 전년 8조8000억원에서 17조8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자산총액 기준 순위도 48위에서 25위로 급상승했다. 건설사의 경우 중흥건설의 자산총액이 대우건설 인수 등으로 9조2000억 원에서 20조3000억원으로 불었다. 순위도 47위에서 20위로 껑충 뛰었다. 카카오와 네이버의도 각각 18위에서 15위로, 27위에서 22위로 올라섰다. 2016년 재계 65위로 대기업집단에 처음 지정된 카카오는 지난 6년 동안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 올해 자산총액을 32조2000억원까지 불렸다. 2017년 재계 51위로 대기업집단에 처음 지정된 네이버는 그동안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해에는 자산총액이 19조2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카카오의 경우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의 기업공개가 자산 증가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네이버는 검색엔진과 e커머스 등 영업활동의 이익잉여금이 증가하고 주요 계열사가 유상증자를 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쿠팡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미국 국적의 김범석 의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총수 지정을 피했다. 공정위는 김 의장의 개인 지분변동, 개인회사 소유현황 등을 분석했지만 반드시 총수로 지정해야 할 사정 변경은 없다고 봤다. 공정위는 현재 총수 친족범위 축소와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문제 등을 검토 중이다. 김 부위원장은 “외국인 총수 지정은 외국인에게 형벌까지 부과할 수 있는 큰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어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시장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제도 개선 여부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