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주식시장 상장)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2년 만에 통상적인 금리인상의 2배에 해당하는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고 고강도 양적긴축(QT) 방침을 밝히는 등 주요국들이 금리인상에 속도를 내는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경기회복 전망마저 어두워지는 바람에 국내 증시수급상황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SK그룹에서 종합 보안사업을 담당하는 SK쉴더스는 오는 19일 상장을 목표로 진행하던 유가증권시장 상장절차를 지난 6일 철회했다. SK쉴더스는 이날 제출한 상장철회 신고서를 통해 “글로벌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해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며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벌였지만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을 고려해 철회 신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박진효 SK쉴더스 대표. [사진 = 연합뉴스]
박진효 SK쉴더스 대표. [사진 = 연합뉴스]

SK쉴더스는 사이버보안 회사 SK인포섹이 물리보안 회사 ADT캡스를 흡수합병하면서 지난해 10월 SK스퀘어의 계열사로 출범했다. 물리보안과 사이버보안, 융합보안 등 사업을 펼치고 있는 SK쉴더스는 지난 3월 IPO를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SK쉴더스가 상장 철회를 한 것은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에 휘말린 데다 미 연준이 5일 기준금리를 빅 스텝 인상하면서 기관투자가의 투자심리가 급랭한 까닭이다. SK쉴더스는 지난 3~4일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 때 이들의 반응이 저조하자 공모가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회사는 당초 희망 공모가를 3만1000~3만8800원으로 제시했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2조8005억~3조4329억원이었다.

하지만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인상과 4% 후반대의 국내 인플레이션, 원화환율 급등 등 겹겹이 쌓인 악재로 국내 증시가 하락하면서 공모가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고평가 논란으로 이어졌다. 물리보안 1위 기업 에스원의 시가총액(2조5000억원)보다 몸값이 높다는 점도 걸림돌이 됐다. SK쉴더스는 최종 공모가를 2만5000원으로 내리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끝내 기관투자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통상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공모기업의 경쟁률이 1000대 1을 웃돈다. 지난달 말 상장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를 기록한 뒤 상한가를 기록함)을 찍은 포바이포는 기관 경쟁률이 1846대 1이었다. 하지만 SK쉴더스는 200대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측은 “이번 IPO 과정에서 대다수 기관투자자로부터 SK쉴더스의 펀더멘털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지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심화돼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며 “이로 인해 상장을 철회하고 향후 시장상황을 고려해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 추진을 다시 검토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공모를 취소한 곳은 SK쉴더스를 포함해 모두 4곳이다. 지난 1월 28일 플랜트 종합엔지니어링업체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을 철회한 데 이어 2월 28일엔 풍력발전 전문업체인 대명에너지가, 3월 16일엔 신약개발업체 보로노이가 상장계획을 접었다. 다만 대명에너지는 지난달 증권신고서를 다시 제출하고 상장을 재추진하고 있다. 최근 공모가를 40% 낮춰 간신히 수요예측 모집 물량을 채운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2년간 호황기를 보였던 IPO 시장이 본격적인 냉각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IPO 시장이 유례없는 활황을 기록했을 당시에는 상장 당일 ‘따상’을 기록하는 기업도 15개에 이를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에는 케이옥션과 유일로보틱스, 포바이포 등 3개사만이 따상에 성공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물론 SK쉴더스는 다시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재무적 투자자인 맥쿼리PE가 SK쉴더스 지분을 인수할 당시 투자금 회수를 위해 2023년까지 IPO를 추진한다는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반기 내에는 상장을 재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투자은행(IB)업계는 SK쉴더스의 IPO 철회 사태가 공모주 시장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초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 이후 등장한 대기업 계열사 IPO 딜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면서 IPO 시장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원스토어의 흥행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2016년 설립된 원스토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 통신 3사와 네이버가 의기투합해 만들어 ‘토종 앱 마켓’으로 불리기도 한다. 구글과 애플이 장악한 국내 앱 마켓 시장에서 점유율 15%가량을 확보하고 있다. 원스토어는 9~10일 수요예측을, 12~13일 일반 청약을 진행한다. 주당 공모 희망가는 3만4300~4만1700원, 공모 주식수는 666만주다.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9100억~1조1100억원이다.

공모가가 낮아 수요예측에 성공할 것이라는 주장과 증시 불안이 지속되고 있어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원스토어마저 수요예측에 실패하고 상장을 연기할 경우 IPO 시장은 당분간 급속도로 얼어붙을 가능성이 크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SK스퀘어의 첫 IPO 딜이 무산된 것이어서 계열사인 원스토어에서도 결코 호재라고 여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IPO 비수기로 꼽히는 지난달 상장한 지투파워와 포바이포가 싸늘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투파워는 공모가 대비 상장일 종가 수익률 115%를 기록했고 포바이포는 따상을 기록했다.

유경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두 기업 모두 확실한 성장산업인 신재생 에너지와 콘텐츠 산업 내에서 각각 다년간의 높은 매출 성장률을 보여줬다”며 “투자자들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확실한 성장’을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올 하반기에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줄줄이 IPO에 나선다. CJ올리브영과 현대오일뱅크,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SK에코플랜트, 11번가, 티맵모빌리티, SK온, LG CNS, 컬리, 쏘카 등이 대표적이다. 증시 상황이 올 하반기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이들 기업의 IPO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우세하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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