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부동산 시장에서 전셋값이 매매가와 비슷하거나 웃도는 이른바 ‘깡통전세’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깡통전세는 지방 중소도시의 저가아파트에서 시작돼 점차 수도권 소형주택이나 빌라로 확산되고 있다. 올 들어 가파른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으로 주택가격이 약세로 돌아섰지만, 실수요자들이 주로 찾는 전세 시장은 상대적으로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4일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 등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의 한 오피스텔(13㎡)은 전세가가 1억7000만원인데 비해 매매가는 1억1900만원으로 전세가가 5100만원 더 비싸다. 경기 평택시의 한 아파트(전용면적 27㎡)는 직전 매매가인 9400만원보다 2600만원 비싼 1억2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59㎡)도 매매가가 1억6140만원으로 전세가(1억8000만원)보다 1800만원 이상 낮게 거래됐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셋값이 오른 상태에서 집값이 조정국면에 접어들면서 전세가율이 높아지는 추세”라며 “갭투자가 성행한 지역을 중심으로 깡통전세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깡통전세는 수도권보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더 빈번히 발생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강원 원주시의 한 아파트(59㎡)는 지난달 1억20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한 달 전 매매 실거래가는 9500만원이었다. 경남 김해시 부곡동의 한 아파트(80㎡)도 매매 실거래가(1억4900만원)보다 1300만원 비싼 1억62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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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선 도시형생활주택에서 그 같은 현상이 주로 나타난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소형 평형으로 구성된 300가구 미만의 단지형 빌라를 말한다. 경기 평택시의 한 빌라(25㎡)는 4월 7000만원에 팔렸는데, 지난달 9500만원에 전세계약을 맺었다. 경기 의정부시의 한 빌라(17㎡)도 5월 매매가보다 1000만원 많은 85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문제는 전세계약 시점에 집값이 이미 전세가보다 낮다면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보증보험 가입 당시에는 주택가격이 전셋값보다 높았다가 이후 집값이 하락해 역전세가 발생한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계약시점에 이미 ‘집값보다 보증금이 많은’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불가능한 까닭이다.

전세가가 매매가를 앞지르는 사례가 속출하는 이유는 최근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고 있는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 수도권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89.8을 기록하며 90 이하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90 이하로 내려온 것은 2019년 8월 12일 조사(89.6)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매매수급지수는 부동산원이 회원 중개업소 설문과 인터넷 매물 건수 등을 분석해 수요(매수)와 공급(매도) 비중을 지수화한 수치다. 기준선(100)보다 낮으면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면서 실수요자들은 향후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해 매매보다 전세를 선호하게 됐고, 이에 따라 전세 물량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전셋값이 급등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87.0으로 8주 연속 지수가 떨어졌다.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지난달 13일 기준)는 93.4로 전주보다 0.3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줄곧 100을 밑돌고 있다. 지난 5월 초부터 시행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한시 배제 조치로 매물이 늘어나고 있는데 반해 금리 인상, 집값 하락 우려 등으로 매수세가 실종된 탓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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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집값이 하락할 경우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할 수 있어서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통상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를 넘어서면 ‘깡통전세’ 위험이 크다고 본다. 지방 중소도시 중에서는 전세가율 80%를 넘기는 도시가 적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기준 전남 광양의 전세가율은 85%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청주 서원구(84.3%), 경기 여주(84.2%), 충남 당진(83.5%), 전남 목포(83.4%), 경북 포항(82.9%) 등도 전세가율이 80%를 웃돌았다.

이 때문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올해 1~5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고금액은 2724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2021억원)보다 35% 증가했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인 사고건수는 2018년 372건에서 지난해 2799건으로 증가해 3년새 6배 이상으로 늘었다. 

특히 주로 부동산거래 경험이 적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등 청년 임차인이 많은 다세대 주택(원룸·오피스텔 등)을 중심으로 피해가 큰 상황이다. 지난해 발생한 전세금반환 보증사고 피해자 중 20~30대 비율이 64.7%를 기록했다. 전세금 반환보증이란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가입자(세입자)에게 대신 전세보증금을 미리 지급하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제도다. 결국 집주인에게서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청년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깡통전세 사례가 속출하면서 정부 역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앞서 지난달 2일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은, 특히 사회초년생에게는 사회생활 출발의 첫 단계에서 사회와 맺는 거래이면서 동시에 전 재산”이라며 “조만간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포함한 전세 피해관련 예방·지원 종합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깡통전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세 집주인의 대출 여부를 확인하고,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 교수는 “주택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을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전세금을 돌려주는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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