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영업자·소상공인·청년 등 취약계층의 부채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내놓은 대규모 금융지원 방안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제시된 방안 중 저소득 청년특례 채무조정제도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대출 원금을 탕감해주는 정책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은 이들을 역차별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를 열고 ‘125조원+α’ 규모의 금융부문 민생안정 프로그램을 최종 확정, 발표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부채상환을 3차례 유예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상환 기간 연장만으로는 빚 부담을 줄이기 어렵다 보고 빚의 일정 부분을 탕감해 주기로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불가피한 금리 인상의 부담이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정부가 서민 금융부담 완화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125조원+α’ 민생안정 프로그램은 ▲새출발기금에 30조원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에 8조7000억원 ▲안심전환대출에 45조원 ▲맞춤형 자금지원에 41조2000억원 등을 투입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우선 자영업자·소상공인 채무조정을 위해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기존 대출을 1~3년 거치, 최장 20년 만기의 분할상환 대출로 바꿔주고, 연체 90일 이상 부실 차주에 대해선 원금의 60~90%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8조7000억원을 투입해 연 7%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해주는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자영업자의 사업 리모델링에 필요한 신규 저리대출에도 41조2000억원을 공급하기로 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9월 말 종료를 앞둔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대출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조치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제도’를 도입했다. 대출해준 은행이 대상 차주의 90∼95%에 대해 자율적으로 다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사실상 ‘무늬만 종료’에다 부실책임을 민간 은행에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예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여유가 있는 은행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고객 관리를 해달라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하는 ‘안심전환대출’도 올해와 내년 각각 25조원, 20조원 규모로 공급하기로 했다. 7월 주택금융공사 보금자리론 금리(연 4.6~4.8%)에 우대금리(0.3%포인트)와 청년혜택(0.1%포인트)까지 받으면 기존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연 4%대 초반의 고정금리 대출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세자금대출 보증 한도도 2억원에서 4억원으로 확대하고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 한도도 올린다. 버팀목 전세대출 한도는 1억2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 전세금 상한은 수도권의 경우 3억원에서 4억5000만원으로 각각 늘어난다. 전·월세 대출 원리금 상환액의 소득공제도 연 3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저신용 청년(만 34세 이하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이 투자 실패 등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청년특례 채무조정제도를 신설하기로 했다. 9월 하순까지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속채무조정 특례 프로그램을 만들고 1년간 한시 운영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면 소득·재산을 고려한 채무과중 정도에 따라 이자를 30∼50% 감면받을 수 있다. 연 10%의 금리는 5∼7%로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최대 3년간 원금 상환유예를 해주며 이 기간 연 3.25%의 낮은 금리를 부과한다. 은행권 신용대출 평균금리가 연 5.78%(5월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이자절감 효과가 크다. 최대 4만8000명의 청년이 1인당 연간 141만~263만원의 이자 부담을 줄일 것으로 금융위는 추산했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민생안정 프로그램을 두고 모럴 해저드를 부추기고 성실하게 원리금을 상환하거나 근로소득 위주로 생활을 해온 이들을 역차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작지 않다. 특히 정부가 주식·가상자산 등 자산가격이 큰 폭으로 조정되며 ‘빚투’(빚내서 투자)로 손실을 입은 청년층에 대한 채무까지 탕감해주겠다고 나서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회사원 정모씨(33)는 “1억원이 넘는 전세대출을 아내와 맞벌이하며 한 푼 한 푼 아껴가며 갚았다”면서 “그런데 ‘빚투’한 청년들의 채무까지 감면해준다니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회사원 오모씨(35)도 “가상화폐는 수익에 대한 과세도 아직 하지 않는데, 손실을 봐 빚을 못 갚는다고 정부에서 나서 이자를 깎아주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며 “결국 매달 월급을 받아 생활비를 아껴가며 이자를 내는 사람만 손해를 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금융당국은 두 차례에 걸쳐 설명자료를 내고 해명에 나섰다. 금융위는 “(청년이) 신용불량자, 실업자 등으로 전락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야 궁극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과 후생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신청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심사를 하는 만큼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빚을 60~ 90% 감면해주는 지원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배드뱅크’에 해당하는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부실화한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을 은행으로부터 매입, 원금을 감면해주고 장기·분할 상환을 하도록 전환해주는 것이다. 이 부문에만 30조원 규모의 자금이 투입된다.

하지만 코로나19 기간에 같은 영업난을 겪으면서도 성실하게 빚을 갚았던 차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채무조정 대상 기준을 세밀하게 설정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환하는 데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포함해 대출금 용처를 분명하게 해서 실제로 운전자금에 쓴 사람과 투자에 쓴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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