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난민’들이 증가하고 있다. 올 들어 서울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거래는 줄어드는 대신 월세 낀 거래가 4만건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라 전세 대출금리가 치솟고 있는 데다 전세금도 크게 오르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거나 전세금 일부를 월세화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월세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지난 17일까지 4만2087건으로 집계됐다. 4만건을 넘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의 거래량(3만4955건)보다 20% 이상 많다.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정해진 법정기한 없이 세입자의 확정일자 신고를 토대로 집계되는 만큼 월세 낀 거래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서울 25개 구 가운데 강서·금천·강동구를 제외한 22개구에서는 월세 거래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거래량을 추월했다. 서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 낀 계약이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35.8%에서 올해 39.9%로 높아져 역대 최고다. 보증금이 월세의 12∼240개월치인 준월세(21.3%)와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를 초과하는 준전세(17.1%), 보증금이 월세의 12개월치 이하인 월세(1.5%)의 비중도 같은 기간 모두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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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화 현상은 전세시장 불안의 결과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전세보증금은 3억4300만원에서 4억5100만원으로 30% 넘게 올랐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가 월세보다 좋지만, 전세금이 지나치게 뛰는 바람에 월 주거비 지출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월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잇따른 금리 인상으로 월세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며 “대출금리가 급등하면 세입자들은 전세대출을 받아 은행에 이자를 내기보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전세는 전체 임대차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60.1%)이 역대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 2년 계약갱신청구권제와 5% 전월세 상한제를 주요 내용으로 한 새 임대차법이 2020년 7월 말 시행된 이후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월세 시장으로 대거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업계는 오는 31일 새 임대차법 시행 2년과 맞물려 서울아파트 신규 전세 재계약의 보증금이 더 오르면서 월세 전환 시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달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강화되는 등 고강도 대출 규제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 상단마저 6%를 넘은 상황이다. 금리 상승에 결국 반강제적으로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월세난민’이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전세자금대출 금리(주택금융공사보증·2년 만기)는 지난 16일 기준 연 4.010∼6.208% 수준이다. 6월 24일(3.950∼5.771%)과 비교해볼 때 불과 20일 사이 하단이 0.420%포인트, 상단이 0.437%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말(3.390∼4.799%)보다는 상·하단이 각각 0.620%포인트, 1.481%포인트 뛰었다.

전세대출 금리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6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2.38%를 기록했다. 전달보다 0.4%포인트나 급등한 수치로 신규 취급액 코픽스 공시가 시작된 2010년 2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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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앞으로 더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지난 15일 발표된 6월 기준 코픽스는 13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분(0.5%포인트)을 반영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기준금리는 지속적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코픽스와 이에 연동된 전세대출 금리는 추가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말로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2년을 맞는다. 임대차법에 따라 임차인은 전세계약 기간을 2년 연장할 수 있고, 계약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도 5% 이내로 묶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계약갱신청구권은 한 번만 쓸 수 있다. 2020년 8월 이후 청구권을 이미 행사한 전세 세입자들은 오는 8월부터 다시 계약하려면 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올려줘야 한다. 예컨대 전세자금 대출이 1억원 늘어나고, 2020년 9월 연 2.52%였던 전세자금 대출금리가 오는 9월 연 4.808∼6.208%까지 올랐다면 월 납입 이자액은 2년 전 86만원의 2배가 넘는 200만∼260만원대로 증가한다.

이 때문에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세입자들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서울 지역의 전·월세 전환율은 4.8% 수준이다. 5억원짜리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 보통 5억원의 4.8%(2400만원)를 12개월로 나눈 200만원을 월세로 내야 된다.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전·월세 전환율보다 낮으면 세입자 입장에서 대출을 받아 이자를 내는 게 유리하다. 그러나 금리가 지금처럼 5∼6%대에 이르면 월세 부담이 크더라도 집주인과의 합의를 통해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게 나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일부 전문가들은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는 차라리 월세를 권하기도 한다. 전세대출을 받을 때 적용되는 금리는 변동되지만, 월세는 한 번 계약하면 2년 동안 금액이 고정되기 때문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지방 아파트나 연립·다세대주택 임대차는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설 경우 보증금 반환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지불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서울 아파트 매매 시장은 극심한 거래 절벽을 보이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일 기준)는 7793건으로 종전 최소였던 지난해 상반기(2만5828건) 의 30%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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