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450만명을 돌파했다. 이들이 빌린 채무액은 600조원에 육박한다. 특히 소득기반이 약한 청년·노년층의 다중채무액 증가속도가 빠른 데다 이들의 채무가 대출금리가 상대적으로 비싼 저축은행, 캐피탈사 등 제2금융권에 몰리는 경향이 있는 만큼 잠재적 부실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한국금융연구원이 펴낸 ‘국내 금융권 다중채무자 현황 및 리스크 관리 방안’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다중채무자 수는 모두 451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가진 채무액은 598조8000억원에 이른다. 5년 전인 2017년 말(416만6000명, 490조6000억원)과 비교하면 다중채무자 수는 8.3%, 채무액은 22.1% 불어났다.

연령대별로는 청년층과 노년층의 다중채무 규모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30대 이하 청년층의 다중채무액은 32.9%(39조2000억원) 증가하며 158조1000억원에 달했다. 노년층도 32.8%(18조원) 증가해 7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중년층도 다중채무액 규모가 5년간 16.2% 늘어났으나 청년·노년층에 비해 증가속도는 절반 수준이다. 이에 따라 다중채무자 1인당 금융권 채무액은 2017년 말 1억1800만원에서 1억3300만원으로 12.8%(1500만원) 증가했다. 청년층은 1억1400만원으로 29.4% 급증했고 중년층도 1억4300만원으로 10.4% 증가했다. 다만 노년층은 1억3000만원으로 10.3% 감소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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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권별로는 저축은행권과 여신전문금융업권(신용카드, 캐피탈사)의 다중채무액 증가율이 높았다. 저축은행권의 4월 말 기준 다중채무액은 2017년 말보다 78.0% 늘어났고 여신전문금융업권도 44.4% 증가하며 전체 채무액 증가율(22.1%)을 크게 웃돌았다. 코로나19 사태 확산 이후 생계형 자금수요가 대폭 늘어난 데다 은행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가 강화되는 바람에 제2금융권으로 대출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다중채무자와 채무액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은 코로나사태 확산 전후의 저금리 상황에서 주식·가상자산 투자열풍이 분 게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고금리 다중채무는 상환부담을 높여 소비여력을 위축시키고, 감내 수준을 넘어서면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며 “부실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채무자는 과도하게 자산시장에 유입된 채무자금을 조정하고, 금융기관은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손실흡수 능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청년·노년층의 다중채무가 제2금융권 중심으로 늘어났다는 데 있다. 저축은행권 노년층 다중채무자 수(9만5000명)와 채무액(2조1000억원)은 5년간 각각 96.6%, 78.1% 증가했다. 저축은행권 청년층 다중채무자 수(50만3000명)와 채무액(11조1000억원)은 각각 10.6%, 71.1% 늘어났다. 노년층은 신용카드사와 캐피탈사를 포함한 여신전문금융업권에서도 다중채무자 수(54만6000명)와 채무액(8조5000억원)이 각각 50.9%, 83.5% 증가했다. 신 센터장은 “제도적으로는 다중채무자의 신용대출과 일시상환 대출을 중도 또는 만기 도래 시에 분할상환 방식으로 전환해주거나 저축은행 등 고금리 상품을 다른 금융업권 또는 정책금융기관의 낮은 고정금리 상품으로 전환해주는 등의 프로그램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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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코로나사태 이후 자영업자 가운데 다중채무자가 2년여 만에 3배 가까이 급증했고 대출 규모는 183조원을 넘어섰다. 영업시간 제한과 거리두기 기간 매출 부진을 추가대출로 충당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내놓은 ‘개인사업자 기업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개인사업자 차주는 314만4163명이고 대출총액은 664조9529억원에 달했다. 차주 수는 전년말보다 12.7%. 대출총액은 4.3% 늘어났다. 이들 개인사업자대출 차주 중 다중채무자는 3월말 기준 38만2235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말 13만1053명에 불과하던 개인사업자 다중채무자는 2020년 말 20만2626명, 2021년 말 28만6839명으로 빠르게 늘어났다. 2년여 기간 동안 개인사업자 다중채무자 수가 3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개인사업자 차주 중 다중채무자 비중은 같은 기간 6%에서 12%로 뛰었다. 

대출액 기준으로도 개인사업자 다중채무 증가세는 가파르다. 개인사업자 다중채무자 대출액은 2019년 말 101조5309억원에서 2020년 말 129조5455억원, 2021년말 162조4312억원, 지난 3월 말 183조1325억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불과 2년 3개월 사이 80.4% 폭증한 것이다.

실제 자영업자 다중채무는 이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사업자대출은 자영업자가 사업자 명의로 받은 기업대출을 말한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통상 개인사업자대출 외에도 개인자격으로 받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 가계대출까지 사업에 끌어다 쓰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사업자대출뿐 아니라 이들이 보유한 가계대출도 따로 파악해야 하는 이유다. 나이스평가정보 등에 따르면 자영업자 다중채무자가 보유한 총대출액은 2020년 말 이미 500조원을 넘어섰다.

다중채무자는 여러 금융사에 빚을 지고 있는 만큼 일단 한 번 연체에 빠지면 ‘연쇄 부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또 개인사업자 대출은 일반 가계대출보다 변동금리 비중과 일시상환식·단기대출 비중도 높아 금리상승기에 더 취약한 편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빚을 돌려막기하는 경우가 많은 다중채무자의 연체율 상승 등에 대한 각별한 관리가 요구된다”며 “자영업자를 위한 정부 차원의 금융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금리부담이 급증했거나 자력 상환이 어려운 자영업자·소상공인 차주에게 적용될 38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방안을 이번 달 공개하기로 했다. 고금리 대출을 보유한 자영업자·소상공인 차주에게 8조5000억원 규모의 저금리 대환 상품을 제공하고,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조성해 원리금 감면 등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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