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5%대로 떨어지면서 가파르게 치솟던 물가 상승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주춤한 게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만큼, 농축수산물과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 외식과 장바구니 물가 등은 높은 상승폭을 보여 서민경제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62(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5.7% 올랐다. 1998년 11월(6.8%)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던 7월(6.3%)보다 증가세가 둔화했다. 물가상승률이 전달보다 낮아진 것은 올해 1월 이후 7개월 만이다. 1월 3.6%를 시작으로 계속 상승해 3월(4.1%)에 4%대로 올라선 뒤 6월(6.0%)과 7월(6.3%)에는 6%대에 진입하기도 했다. 두 달 연속 6%대를 기록했던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 만에 5%대로 소폭 하락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전달 대비 등락이다. 8월엔 전달(108.74)보다 0.1% 하락했는데, 이는 2020년 11월(-0.1%) 이후 21개월 만의 하락 전환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도 아직 5%대의 높은 물가수준이지만 그 기세가 한풀 꺾인 것으로 평가된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도 전년 같은 달보다 4.4% 상승하며 전달(4.5%)보다 오름세가 소폭 둔화됐다. 향후 1년의 물가상승률을 예상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7월 4.7%에서 8월 4.3%로 낮아졌다. 이 역시 여전히 높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첫 하락이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6.3%가 정점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그는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나와 “6.3% 언저리가 거의 정점에 가깝고, 현재로선 시간이 지나며 안정되고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며 “대외변수가 있는 만큼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추석이 고비다. 추석 고비 넘기면 물가가 조금씩 안정세를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물가를 잡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할인쿠폰(650억원)을 배포하고 농축수산물 방출·긴급수입 등 모든 가용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다만 8월 소비자물가 진정에는 국제유가 하락이 크게 한몫했다. 국제유가는 3~7월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흐름에 비해 진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배럴당 두바이유 평균가격은 △3월 111달러 △4월 103달러 △5월 108.3달러 △6월 115.7달러 △7월 106.5달러 △8월 97.7달러를 기록했고 1일 기준으로는 92.1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평균 72.8달러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아직도 높지만 최근 들어 안정적 흐름을 보이는 모양새다. 휘발유가격도 ℓ당 △5월 1967.1원 △6월 2084.0원 △7월 2030.0원 △8월 1792.2원 △9월 1일 1742.5원을, 경유는 △5월 1468.9원 △6월 1964.3원 △7월 2089.0원 △8월 1889.3원 △9월 1일 1850.3원 등 비슷한 속도로 하향 안정화 중이다. 8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전달 대비 각각 12.4%, 10.0% 하락했다.
품목성질별 분류에서 석유류지수는 전달보다 10% 하락했다. 석유류가 전달보다 10% 하락한 것은 1998년 3월 15.1% 하락한 이후 최대치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석유류의 기여도가 지난달 1.59에서 0.9로 줄었다면서 “거의 (소비자물가지수를 전달 상승폭 대비) 0.6%포인트 하락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출목적별 분류에서 전달보다 유일하게 하락한 교통(-4.9%)의 경우도 석유류가격 하락에 기인했다. 교통물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휘발유 및 경유와 같은 석유류제품인 까닭이다.
8월 물가상승률이 다소 주춤해졌지만, 물가 자체는 높은 수준이다. 전기·가스·수도 상승률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7% 올라 전달과 같았고 전기료(18.2%)와 도시가스(18.4%), 지역난방비(12.5%), 상수도료(3.5%) 모두 일제히 올랐다. 더욱이 공공요금 인상 여파로 전기·가스·수도 상승률은 관련 조사가 시작된 2010년 1월 이후 가장 높았다.
서민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장바구니 물가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농축수산물은 7.0% 올라 7월(7.1%)과 비슷했고 이중 농산물 상승률이 10.4%로 전달(8.5%)보다 크게 높아졌다. 특히 배추(78.0%)와 오이(69.2%), 파(48.9%) 등 채소류가 27.9%나 올라 전반적인 농산물 물가를 끌어올렸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와 여름 성수기 수요 증가 등으로 외식 등 개인서비스 품목의 물가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 개인서비스 품목은 전년 같은 달보다 6.1% 올라 1998년 4월(6.6%)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달에도 추석 명절 성수기에 따른 수요 증가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자가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6.8% 올라 전월(7.9%)보다 상승폭이 다소 둔화했지만 여전히 높다.
8월 이후 계속 소비자물가가 안정세를 이어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물가안정세가 국제유가 하락에 기인하고 있으나, 현재 산유국 협의체에서 감산 이야기가 나오는 등 재상승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 심의관은 “최근 들어 오펙플러스(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가 감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국제유가 변동성이 확대되는 상황인 만큼 물가가 정점을 지났는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조심스럽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도 이날 이환석 부총재보 주재로 ‘물가상황 점검회의’를 연 뒤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구체적으로 국제유가의 경우 글로벌 수요둔화 우려가 하방 리스크로 잠재해 있지만, 러시아·유럽 갈등 고조에 따른 에너지가격 급등 가능성이 여전히 상방 리스크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