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2억원 이상을 연체한 고액체납자들의 체납액이 올 들어 1조원 가까이 급증하면서 전체 체납액이 5조원을 돌파했다.

국세청이 최근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고액체납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고액체납자의 전체 체납액은 5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고액체납자의 체납액(4조4044억원)보다 9956억원(22.6%) 증가한 수치다. 올해 상반기에만 1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고액체납자는 명단이 공개되는 기준금액인 2억원 이상을 체납한 사람을 말한다.

고액체납자의 체납총액은 2018년 3조1752억원에서 2019년 3조382억원으로 줄었다가 2020년 3조1768억원, 2021년 4조4044억원으로 3년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고액체납자수도 6월 말 기준 8298명으로 지난해 말(6770명)보다 1528명(22.6%) 늘어났다. 1인당 평균 체납액은 6억5000만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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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0억원 이상 체납한 사람은 6월 말 기준 888명으로 지난해 말(740명)보다 148명(20.0%) 늘어났다. 이들의 체납총액은 2조5877억원으로 지난해(2조1200억원)보다 4677억원(22.1%) 증가했다. 고액체납을 포함해 올해 전체 체납액은 13조1511억원으로 지난해(11조4536억원)보다 1조6975억원(14.8%) 불어났다. 체납인원은 같은 기간 84만9700명에서 79만1817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체납액 1000만원 이하 구간(68만5675명→61만4754명) 등에서 감소했기 때문이다.

고액·상습체납으로 공개명단에 오른 인원도 증가세를 보였다. 국세청은 성실납부를 위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공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대상은 2억원 이상을 체납한 뒤 1년이 지난 사람들이다. 공개명단에 오른 체납자(개인+법인)는 지난해 말 7016명으로 2020년 말(6965명)보다 51명(0.7%) 늘어났다. 공개인원은 2019년(6838명) 이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액·상습체납으로 출국이 금지된 사람은 6월 말 기준 4814명으로 지난해 말(5018명)보다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출국이 제한되면서 출국금지 요건 중 하나인 해외 출국횟수를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까닭이다. 강준현 의원은 “고액체납자와 체납액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성실납세자와의 공평성에 심대한 문제가 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체납액을 끝까지 추적해 환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세정당국은 악성 고액체납자에 대한 특별정리에 들어갔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지지부진했던 체납자재산 현장추적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지난달부터 ‘명단공개자 특별정리’를 시작했다. 체납기간 1년 이상, 체납국세 2억원 이상의 고액·상습체납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 체납액, 체납 세목 등을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국세청은 명단이 공개된 ‘악성 체납자’를 대상으로 숨겨둔 재산확인 등 고강도 조사에도 착수했다. 금융분석, 현장수색 등을 통해 명단 공개자가 제3자 명의로 돌려놓은 재산 등을 샅샅이 찾아 체납세금을 환수하겠다는 방침이다. 명단이 공개된 고액·상습 체납자는 현재 개인 3만1641명, 법인 1만3461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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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중 체납액이 가장 많은 사람은 40대 홍영철씨로 1633억원의 세금을 체납해 2019년 공개명단에 올랐다. 이때부터 홍씨는 국내 고액·상습체납자 중 체납액 1위라는 ‘명예’를 얻었다.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등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명단에는 세금 1073억원을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715억원을 체납한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570억원을 체납한 주수도 전 제이유그룹 회장 등도 이름을 올렸다. 전 프로야구선수 윤성환(2021년 등재)씨와 임창용(2020년 등재)씨도 각각 6억원과 2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아 명단에 포함됐다. 인천 서구에 소재한 상일금속주식회사는 873억원 세금을 체납해 명단공개자 법인 중 체납액이 가장 많다.

국세청은 올해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한 현장 추적조사도 강화하기로 했다. 2020~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제약을 받았던 현장 추적조사를 올해는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현장 추적조사는 국세청 직원들이 주소지를 탐문해 체납자 차량을 확인하고 잠복 후 수색을 통해 집안에 숨겨둔 현금이나 금괴 등 고가의 귀금속을 찾아 압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국세청은 또 세금납부 이력과 재산현황 등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체납자별로 효율적인 강제 징수수단을 제시하는 등 체납 관리도 효율화하기로 했다.

사실 이런 조치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국세청은 2004년부터 체납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지만, 공개만으로 큰 효과가 없자 2019년 문재인 정부는 더 강력한 조치인 ‘호화생활 악의적 체납자에 대한 범정부적 대응강화 방안’을 내놨다. 악성 체납자를 최대 30일까지 유치장에 수감하는 감치명령제도를 도입하는 게 주 내용이다. 국세를 세차례 이상 연체하고, 체납액이 1억원이 넘으며, 1년 이상 세금을 내지 않은 이들이 대상이다. 출국금지 대상인 체납자가 여권을 발급받자마자 해외로 도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권 미발급자에 대한 출국금지 방안도 마련했다. 물론 일정 부분 성과도 있다. 같은 해 9월 국세청은 고액·상습체납자에 대한 감치제도가 도입된 후 처음으로 2억 이상 체납자 3명에 대해 감치를 신청한 바 있다.

지난 3월 시작한 고액·상습 체납자 584명에 대한 집중 추적조사도 진행한다. 국세청은 총체납액이 3361억원에 달하는 이들이 배우자와 자녀 등에게 재산을 편법으로 이전했거나 세금은 내지 않으면서 고가 수입차를 몰고 호화 생활을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

국세청이 2020년 공개한 고액·상습체납 명단공개자의 누적 체납액은 51조1000억원에 이른다. 국세청이 고액 상습·체납자 수색과 조사를 통해 징수한 금액은 2019년 2조268억원, 2020년 2조4007억원, 2021년 2조5564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지만 징수율이 3%대에 그치고 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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