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대폭 인상이 확실시되면서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 기준금리보다 높아지는 한·미 금리역전 현상이 재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연준이 강력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앞으로도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돼 연내 한·미 금리차가 1%포인트 이상 벌어지고, 그 여파로 대규모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연준은 20∼2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자이언트 스텝)할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의 예상대로 인상이 이뤄지면 미국 금리는 현재 2.25∼2.50%에서 3.00∼3.25%로 올라 한국 금리(2.50%)를 크게 웃돌게 된다. 통상적으로 한국 금리가 미국보다 높지만, 연준이 올 들어 금리를 4차례에 걸쳐 2.25%포인트나 인상하는 바람에 7월 말부터 한 달가량 양국 기준금리가 역전된 바 있다.

당초 시장의 관측은 미국의 이달 금리인상 폭이 0.5%포인트(빅 스텝)냐, 자이언트 스텝이냐로 좁혀져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물가상승세가 예상과 달리 8월에도 높게 나타나자 연준이 통화긴축 선호 성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졌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지난 13일 이후 빅 스텝 전망은 사라지고 대신 1%포인트 인상(울트라 스텝) 전망이 급부상했다. 선택지가 ‘빅 스텝 vs 자이언트 스텝’에서 ‘자이언트 스텝 vs 울트라 스텝’으로 바뀐 모양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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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자이언트 스텝이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가 연준 금리변경 확률을 추산하는 도구인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자이언트 스텝 확률이 82%로 울트라 스텝(18%)을 크게 앞섰다.

주목할 점은 시장이 울트라 스텝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는 사실이다. 1%포인트 인상은 연준이 연방기금금리(FFR)를 통화정책 수단으로 채택한 1990년 이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영역인 까닭이다.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울트라 스텝이라는 초강수를 두지 않더라도 금리를 더 오래, 더 높이 올릴 것이란 게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8월 물가지표 발표 전 3.90%에서 발표 후 4.23%로 급등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금리의 경로를 예측하면 현재로서는 연준이 올해 남은 11월과 12월 회의에서 모두 빅 스텝을 취할 것이 유력시된다. 

반면 한국은 올해 남은 두 차례 회의 모두에서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기준금리가 3%에 머물게 된다. 이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그동안 밝힌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 지침)를 참고해 인상폭이 통상 수준(0.25%포인트 인상)에 그칠 것임을 고려한 전망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연말 미국 금리(4.00∼4.25%)와 한국 금리(3%)의 격차는 1.00∼1.25%포인트로 벌어진다. 한국이 적극적인 금리인상에 나서지 않으면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국내 시장에서 자금 유출을 야기해 환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투자자들은 금리가 더 높은, 곧 수익률이 더 좋은 시장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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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가뜩이나 원/달러 환율이 1400원선을 위협하며 원화가 극심한 약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원화가치는 올 들어 미국 달러화보다 16%가량 곤두박질쳤다. 주요국 통화 가운데 일본 엔화(-24%), 스웨덴 크로나화(-16%) 다음으로 하락 폭이 크다. 물론 달러화의 초강세로 달러를 제외한 대다수 국가의 통화가 절하되고 있지만, 원화가치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큰 것은 무엇보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인상 속도 차이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정책 당국은 한·미 정책금리가 역전되더라도 자본유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8일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를 통해 “한·미 간 금리 역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이 큰 폭으로 순유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채권 수익률이 신용등급에 비해 양호한 수준이고, 장기 투자성향을 지닌 공공자금의 투자비중이 높은 편이라는 점이 주요 근거다.

외국인 채권투자액 중 중앙은행, 국부펀드 및 국제기구 등 공공자금의 투자비중은 6월말 61.9%를 기록했다. 2020년 말 71.7%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여전히 높다는 평을 듣는다. 주식 투자자금의 경우 코로나19 위기 과정에서 외국인 포트폴리오 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됐고, 올 상반기에 주가가 이미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는 점도 추가유출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7월말 외국인의 국내 주식보유 비중은 26.4%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던 2009년 5월(26.4%) 이후 최저 수준이다.

과거 금리 역전기에 자본이 오히려 유입됐다는 점도 과도한 우려를 배제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미 연준의 이전 세 차례 정책금리 인상기 동안 한·미 간 금리는 모두 역전됐고 최대 역전폭은 87.5~150bp(1bp=0.01%포인트)에 이르렀으나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은 이 기간 169억~403억 달러 순유입됐다. 이는 외국인 증권투자금 유출·입에는 내외 금리차(통안증권 금리에서 미 달러 리보금리 차감)뿐 아니라 환율전망, 국내외 금융·경제여건, 투자자의 투자전략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은은 “외국인 투자자는 투자성향이 상이한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돼 있고, 각 주체별로 금리 역전기 또는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내외 금리차 역전에도 불구하고 투자전략 차이 등에 따라 차별화된 증권투자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 외국인 증권투자 자금의 대규모 유출은 내외 금리차 역전보다 2008년 금융위기, 2015년 중국 금융불안, 2020년 코로나19 위기 등과 같은 글로벌 리스크 발생에 주로 기인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글로벌 리스크 요인이 가세해 국제 금융시장 여건이 예상보다 악화된다면 한국에서도 자금유출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은은 덧붙였다. 한은이 언급한 글로벌 리스크 요인은 연준의 긴축속도 가속 및 강도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 확전, 중국 경기부진 심화 등이 꼽힌다. 문제는 이런 리스크 요인들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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