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리나라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가 적자를 기록하면서 6개월 연속 적자가 이어졌다. 무역적자가 6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내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5월 이후 25년여만에 처음이다. 올해 누적 무역적자 규모도 300억 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37억7000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수출은 574억60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 증가한 반면 수입은 612억3000만 달러로 18.6% 늘어난데 따른 결과다. 수출이 소폭 늘어나는 데 비해 수입액은 가파르게 늘어나며 적자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는 올해 4월부터 6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12월 4억300만 달러 적자를 나타내며 20개월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49억2000만 달러로 적자 규모를 키웠다. 2월과 3월엔 각각 8억3000만 달러, 1억200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섰지만 4월 24억8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이후 적자행진이 지속되고 있다. 8월에는 한 달 동안 적자가 94억9000만 달러로 치솟으며 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 적자 기록을 경신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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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 들어 지난달까지 쌓인 무역적자 규모는 288억9000만 달러로 300억 달러에 육박했다. 1956년 무역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최대 규모다. 이 같은 추세면 당장 이달 내로 누적 무역적자가 300억 달러를 돌파할 수 있는 만큼, 올해 연간 무역적자가 300억 달러를 웃돌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에 힘이 실린다. 기존 연간 최대치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기록한 206억2400만 달러다. 연간 기준 무역수지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32억67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뒤 지난해까지 줄곧 흑자였다.

다만 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던 대중 무역수지는 5개월 만에 흑자(6억8000만 달러)로 돌아섰다. 수출(134억 달러)은 7·8월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수입이 130억 달러 중후반이었던 7·8월보다 크게 줄어든 127억 달러에 그쳐 흑자를 기록했다. 이차전지 소재를 비롯한 정밀화학 수입이 전체적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4억 달러 줄어든 것이 대중 무역수지 개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9월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559억 달러)보다 15억6000만 달러 이상 많은 574억6000만 달러로 역대 9월 기준 최고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수출이 603억 달러를 나타낸 것을 감안하면 감소세 전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진단이 나온다. 수출증가율은 2.8%에 그치며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아슬아슬하게 이어갔다. 월별 수출 증가율은 지난 6월 5.3%를 나타내며 뒤 4개월 연속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월 수출 증가율 2.8%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10월(-3.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1391.6원으로 1월(1194.0원)보다 증가했지만 수출 증가폭은 오히려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환율은 오르지만 주요국 경기 둔화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해 수출 증가율이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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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주요 수출품목 가운데 증가한 부문은 석유제품(52.7%)·자동차(34.7%)·이차전지(30.4%)·선박(15.5%)·차부품(8.7%) 등 5개에 그쳤다. 컴퓨터(-23.6%)·철강(-21.1%)·디스플레이(-19.9%)·석유화학(-15.1%) 순으로 감소세가 뚜렷했다. 지역별로는 미국(16%)·중동(9.1%)·인도(8.5%)·아세안(7.6%)·일본(2.5%) 등 5곳에 대한 수출은 늘어났다. 반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여파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수출은 여전히 가파른 감소세(-29.9%)를 이어갔다. 코로나19의 산발적 확산에 따른 도시봉쇄로 성장세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수출(-6.5%) 역시 감소했다. 에너지 수급차질 등에 따라 경기 둔화를 보이고 있는 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0.7%)도 줄었고, 인플레이션발 불안정 속에 빠져 있는 중남미 지역 수출(-0.2%)도 감소했다.

지난달 수입은 612억3000만 달러로 7개월 연속 600억 달러대를 기록했다. 에너지 수입이 대폭 늘어난 것이 원인이었다. 지난달 원유·천연가스(LNG)·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액은 179억6000만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30% 정도를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99억1000만 달러)과 비교하면 81.2% 증가한 수치다. 수출 호조세에도 무역수지가 적자를 이어간 이유다. 산업부는 “원유·가스·석탄 가격 모두 지난해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인데다 동절기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한 조기 확보 영향으로 수입이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 생산을 위한 핵심 중간재인 반도체(19.8%)와 수산화리튬, 니켈-코발트 수산화물 등 배터리 소재·원료를 포함한 정밀화학 원료(51.8%) 수입도 크게 늘어났다.

물론 무역적자 기조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 주요국도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더욱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쌓인 누적 무역적자가 12조2000억엔(약 121조원)으로 지난해(6000억엔)보다 20배 넘게 불어났다.

정부는 앞으로도 무역수지 적자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킹 달러’ 현상이 지속되며 국내 경제에서 중대변수로 꼽히는 원-달러 환율을 추가로 밀어 올릴 수 있어서이다. 에너지 수급난의 주요 배경인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로 이런 흐름의 반전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국면이다.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수출 증가율이 6월 이후 한 자릿수를 기록 중인 상황이고 글로벌 경기둔화와 반도체 가격 하락 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 높은 수출 증가율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대중 무역수지가 5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되고 9월 무역적자 규모가 전달보다 50억 달러 이상 감소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덧붙였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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