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돼 정부가 과잉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한다면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조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돼 재정부담이 크게 우려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장격리(정부매입)가 의무화되면 연평균 20만t에 이르는 쌀 초과생산량이 지금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최근 내놓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이라는 제목의 현안보고서에 따르면 농경연은 양곡관리법 개정영향에 대해 “벼 재배농가의 소득 안정성 강화효과가 기대된다”면서도 “(쌀) 과잉 생산량이 확대되고 이로 인해 재정부담이 증가하며 다른 작물전환 정책에 대한 농가의 참여 저하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농경연은 양곡관리법이 시행돼 쌀 정부매입 조치가 의무화될 경우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조443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했다. 벼 재배면적 감소폭이 둔화되면서 쌀 초과생산량이 연평균 46만8000t으로 확대되는데 따른 것이다. 개정안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가정했을 때와 비교하면 초과생산량이 132.6% 많은 수준이라고 농경연은 설명했다.

창고에 쌓여 있는 쌀 포대들. [사진 = 연합뉴스]
창고에 쌓여 있는 쌀 포대들. [사진 = 연합뉴스]

구체적으로 보면 개정안 도입시 올해 초과생산량은 24만8000t 규모이지만 해마다 늘어나며 2030년에는 64만1000t까지 증가한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쌀수매에 드는 예산도 올해 5559억원에서 2030년 1조4042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농경연이 미국의 대표적인 농업 연구기관 식품농업정책연구소와 2년 간의 공동연구를 통해 구축한 예측 모형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다.

민주당은 최근 쌀값이 폭락하자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지난 달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법안심사 소위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의결했지만, 이후 여당인 국민의힘과 개정안 처리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농해수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초과생산된 쌀의 정부매입을 의무화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현행법상 정부는 쌀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의 3% 이상이거나 가격이 전년 대비 5% 넘게 하락하면 초과생산량 한도 내에서 쌀을 매입할 수 있다. 개정안은 정부의 재량권을 없앴다.

하지만 국민의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량이 빠르게 감소하는 가운데 쌀 생산은 줄어들지 않으면서 산지 쌀값은 지난해 10~12월 40㎏에 5만3535원에서 지난달 25일 4만1836원으로 22%가량 급락했다. 정부가 지난해 수확기부터 37만t에 이르는 쌀을 매입했지만 쌀값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에 초과 생산량에 대한 정부매입을 의무화하면 쌀값을 떠받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이 ‘한국 사람은 밥심’ ‘식량 주권’ 등을 내세우며 양곡관리법 개정에 두 팔 걷은 것은 민주당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는 호남지역이 바로 쌀 주산지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논 면적이 가장 넓은 시·군 1~10위는 충남 당진과 서산, 경북 경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호남이다. 쌀농사를 짓는 농민이 많은 지역구 의원들이 당연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쌀 정부매입 의무화 조치가 만성적인 쌀 초과공급 구조를 한층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쌀 정부매입 의무화가 이뤄질 경우 2022~2030년 기간 중 연평균 초과 생산량은 46만8000t에 달할 것이라고 농경연은 예측했다. 정책 개입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의 초과 생산량(20만1000t)보다 2배가 넘는 규모다. 초과 생산분 모두를 정부가 매입해주다 보니 그 양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올해 24만8000t 수준인 쌀 초과 생산량은 2030년 64만1000t까지 늘어난다. 연구진은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이 약화돼 과잉생산량이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쌀 정부매입에 투입되는 예산은 연평균 1조443억원에 이르게 된다. 해마다 쌀이 남아돌다 보니 매입한 쌀은 보관 기한(3년) 후 매입가 10~20% 수준의 헐값에 주정용·사료용으로 팔린다. 정부매입에는 헐값매각에 따른 손실에 보관료와 금융비용까지 더해진다. 해마다 초과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올해 투입 예산은 올해 5559억원에서 2030년엔 1조4042억원까지 늘어난다. 농경연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개정안을 도입할 때 쌀 수급전망 및 향후 재정변화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관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와 여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에 공식 반대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정부가 무조건 초과 생산량을 사들이면 고질적인 쌀 공급 과잉 구조가 더 심화되는데다 안 써도 될 예산을 투입해 청년농 육성 등 농업혁신을 위한 투자도 힘들어진다는 게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쌀 산업동향 및 쌀값 안정방안’을 통해 “시장격리 예산은 매입비, 보관료 및 이자비용으로 농업발전을 위한 투자와는 관련이 없는 소모성·휘발성 성격의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지난달 “양곡관리법 개정은 쌀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고 재정부담을 가중시켜 미래 농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정부매입 의무화가 그간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쌀 수급 균형 달성 노력을 수포로 돌릴 것이라고 농식품부는 보고 있다. 정권과 관계없이 역대 정부가 만성적인 쌀 과잉생산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논에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쌀 소득과의 차액을 지원하는 식의 정책을 펼친 결과 쌀 생산량은 2011년 이후 10년 동안 연평균 0.7% 감소했다.

그렇지만 국민 식생활 변화에 따라 같은 기간 쌀 소비량이 연평균 1.4%씩 더 빠르게 감소하면서 쌀은 평년작 기준 연평균 20만t이 초과 생산되고 있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쌀은 기계화율이 98.6%에 달해 다른 작물보다 재배 편의성이 높은 작물”이라며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판로 걱정도 필요 없는 까닭에 재배유인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비슷한 논의가 노지 채소 등 다른 작물로까지 확산할 수도 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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