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비스(집세·공공서비스·개인서비스) 부문의 물가상승률이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비스 부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서비스 중 외식물가는 9.0% 급등해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서비스 가격은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하방경직성이 강해 물가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9월 서비스 물가지수는 106.53(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4.2% 올랐다. 2001년 10월(4.3%) 이후 2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서비스 물가상승률은 2020년 0%대에 머무르다가 지난해 중반 2%대로 오르더니, 올해 7월 4.0%로 14년 만에 4%대로 껑충 뛰었다. 고(高)물가가 농산물·석유류 등 공급 측에 머무르지 않고 서비스 가격 등 수요 측으로 확산돼 전체 소비자물가의 중장기적 상승국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 물가상승은 ‘덩치가 큰’ 개인서비스 물가지수가 주로 끌어올렸다. 개인서비스의 물가상승률은 6.4%로 1998년 4월(6.6%)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개인서비스 중에서도 외식물가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외식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9.0% 올라 1992년 7월(9.0%) 이후 3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외식 품목 별로 보면 햄버거(13.5%), 갈비탕(12.9%), 김밥(12.9%), 자장면(12.2%), 해장국(12.1%), 치킨(10.7%), 생선회(9.6%) 등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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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물가를 보면 전체 148개 품목 중 83.8%에 해당하는 124개 품목이 1년 전보다 올랐다. 국내 단체여행비 상승률이 24.7%로 가장 높았다. 국제항공료(18.0%), 여객선료(15.6%), 국내 항공료(11.5%) 등 여행 관련 품목과 보험서비스료(14.9%), 대리운전 이용료(13.1%), 세탁료(10.7%) 등도 많이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와 같은 대외적 요인에 따라 시작된 고물가가 대내적인 부문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심화한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등의 악재가 에너지·원자재·곡물가격 급등세로 이어졌고, 이것이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상승으로 확산하면서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주체를 고통에 빠뜨린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의 9월 상승률은 지난 7월과 같은 4.5%로 2009년 3월(4.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는 4.1% 올라 2008년 12월(4.5%)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농축수산물 지수는 1년 전보다 6.2% 상승했다. 작황 부진으로 출하량이 급감한 배추와 무는 각각 95%와 91%를 기록했다. 뒤이어 당근(48.1%)과 풋고추(47.3%) 파(34.6%), 가지(32.8%), 부추(30.9%),감자(30.1%)도 상승폭이 컸다.

서비스 부문은 근원물가 지수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소비자 물가의 오름세가 ‘10월 정점’을 지나더라도 서비스 물가 상승에 따라 고물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비스 가격은 하방 경직성이 강한 까닭에 한번 오른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더라도 서비스 가격이 오르면 고물가 기조는 꺾이지 않는다. 이런 만큼 실질 구매력이 악화된 소비자들은 지출을 더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내놓은 국민 1000여명 상대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물가와 빚 부담에 하반기 소비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여기에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13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회원국을 합친 23개 산유국의 협의체 OPEC+(플러스)가 지난 5일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세계 원유 1일 공급량의 2% 정도 되는 규모다.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 등도 고물가 지속 전망의 근거가 되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서비스 가격은 잘 내려가지 않는다”며 “환율이 계속 높아 물가를 떨어뜨리는 힘이 약하고 원자재 가격 하락폭도 크지 않아 올해 말까지는 물가상승률이 5%대를 보일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부 역시 고물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늦어도 10월에 물가 정점이 올 것이란 정부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공공요금이나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은 한 번 올라가면 내려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이 있기 때문에 설령 물가가 정점을 지나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물가상황은 이어질 듯하고, 하락하더라도 굉장히 서서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물가안정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삼겹살(국산·200g) 평균 판매가는 1만8851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9.67% 상승했다. 삼겹살 가격은 올 1월 1만6983원에서 8월 1만8851원으로 10.99% 올랐다. 서울 시내 소재 고깃집에서 4인 가족이 삼겹살로 외식을 한다면 10만원 넘게 비용이 나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서울의 김밥 1줄 평균 가격은 3046원으로 3000원을 돌파했다. 올해 1월 2769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 올랐다.

지난달 다소비 가공식품 32개 중 22개 품목의 가격이 전달보다 상승했다. 국민들이 많이 찾는 가공식품 10개 중 7개꼴로 한 달 새 가격이 올랐다는 의미다. 가격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항목은 고추장으로 전달보다 11.7% 올랐다. 이어 콜라(9.6%)와 참치캔(5.9%), 마요네즈(5.1%), 라면(4.8%) 수프(4.6%), 어묵·즉석밥(3.1%) 등 순서로 가격 상승률이 높았다. 주요 제조사의 출고가 인상 및 유통업체 할인행사 종료 등이 가격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반면 전달보다 가격이 하락한 품목은 식용유(-9.0%), 소시지(-6.1%) 등이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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