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물가가 석 달 만에 상승세 돌아섰다.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이 한 달 새 100원 가까이 폭등하며 물가를 끌어올렸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하면서 고환율이 수입물가를 밀어올리고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내놓은 ‘9월 수출입 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달보다 3.3% 오른 154.38(2015년=100)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대비 상승률은 무려 24.1%에 이른다. 수입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지난 7월(-2.6%)과 8월(-0.9%) 등 2개월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지난달 수입물가는 환율이 폭등하면서 3개월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9월 환율은 1400원을 넘어선 것은 물론 한때 1440원까지 치솟으며 평균 환율이 전달보다 5.5% 상승한 1391.59원을 기록했다.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는 5.9% 내렸다. 결국 환율 상승이 국제유가 하락을 상쇄하며 물가를 끌어올린 셈이다. 환율 상승이 없었다면 수입물가는 전달보다 1.4% 낮아졌을 것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품목별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등의 영향으로 에너지 가운데 천연가스(LNG)가 13.7% 뛰었다. 중간재 가운데 시스템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5.4%)와 농림수산품(4.0%) 등의 가격도 올랐다. 반면 석탄·석유제품이 전달보다 2.1% 내렸다. 서정석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계약통화 기준 반도체 가격이 하락했으나,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화 기준으로는 가격이 올랐다”며 “10월의 경우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서 수입물가 변동요인을 속단해서 전망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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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물가지수 역시 환율급등의 영향으로 전달보다 3.2% 상승한 131.74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5.2% 올랐다. 전년 같은 달 기준으로는 20개월 연속 오름세다. 석탄 및 석유제품이 전달보다 -1.1% 내렸으나 화학제품(3.9%)과 시스템반도체, D램이 속해 있는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3.4%) 가격이 물가상승을 이끌었다.

수입물가가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국내 소비자물가는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수입물가는 1~3개월 뒤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앞으로 소비자물가는 환율상승 등이 추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도 고환율이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근거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10월 물가 정점론’을 비웃듯 고물가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으로 주춤해질 줄 알았던 지난달 수입물가가 고환율 여파로 오히려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9월 수입물가는 전달보다 3.3% 오르며 3개월 만에 상승세로 반전됐다. 여기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산유국 모임인 OPEC+의 하루 200만 배럴 감산 결정으로 원유가격이 다시 요동치고,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액화천연가스(LNG) 가격도 심상찮다. 이런 판국에 우유와 철강, 시멘트 가격 등도 줄줄이 오르면서 ‘물가와의 전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더욱 힘을 얻게 됐다.

최근 물가불안을 자극하는 변수로는 고환율로 지목됐다. 전 세계를 강타한 달러화 강세의 여파로 환율은 지난달 말에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400원을 돌파했고 이달 들어서는 1440원까지 고점을 높였다. 통상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생산자물가 상승→소비자물가 상승’의 과정을 거친다. 서정석 팀장은 “수입물가는 소비자물가와 1개월가량 시차를 두고 반영되며 상당 품목에 3개월 이내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당장 10월 소비자물가부터 수입물가 급등의 영향을 받게 된다는 애기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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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치보다 높은 8.2%(전년 동월 대비)를 기록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1월에 또다시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럴 경우 한·미 기준금리 역전폭은 0.25%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벌어진다.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다시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10월 물가정점론은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하락이 전제됐던 것”이라며 “환율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만큼 이달 이후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너지가격 고공행진도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재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두바이유 수입가격은 배럴당 91.19달러였다. 지난달 27일 배럴당 84.25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이달 초부터 90달러대로 올라선 것이다. OPEC+가 원유를 감산하기로 한 여파다. 시장에선 연내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LNG 수입가격은 8월 t당 1194.59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존 최고치였던 1월(1138.14달러)보다 56.45달러나 높다. 1년 전인 지난해 8월(535.02달러)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으로 급등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LNG 수급난이 벌어진 탓이다. 이승한 기획재정부 경제분석과장은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을 굉장히 중요한 리스크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부터 전기요금이 5.7%(주택용 기준), 가스요금은 15.9% 오른 것도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원자재 가격도 상승세다. 포스코 포항공장 침수와 현대제철 파업 등으로 철강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주요 시멘트 업체들은 다음달 15% 안팎 가격을 올리기로 하고 레미콘 업체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식탁물가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이달 말까지 원유(原乳)가격 협상을 마치기로 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마시는 우유를 비롯해 유제품과 과자 등 가공제품 가격도 줄줄이 오른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당분간 물가가 진정세로 돌아서긴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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