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이 내년부터 건강보험 급여비 등 ‘총지출’이 보험료 수입, 정부지원금 같은 ‘총수입’보다 많아지는 까닭에 적자로 전환되고, 2028년엔 적립금마저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른바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대규모 보장성 강화정책을 시행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건강보험 수지가 내년에 1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건강보험 수지는 2018년 2000억원, 2019년 2조8000억원, 2020년 4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병원 방문 감소 등으로 2조8000억원 흑자를 낸데 이어 올해에도 1조원의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내년엔 1조4000억원 규모의 적자로 돌아선 뒤 2024년 2조6000억원, 2025년 2조9000억원, 2026년 5조원, 2027년 6조8000억원, 2028년 8조9000억원으로 적자규모가 점차 커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기준 20조2400억원에 이르던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8년 -6조400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정부는 내다봤다. 건강보험수지 적자가 지속되면서 6년 뒤면 적립금이 고갈될 뿐 아니라 마이너스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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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11일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건강보험 재정전망 및 정부지원 법 개정 필요성’ 보고서 내용도 이와 비슷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적립금은 21조2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내년에는 20조1000억원으로 줄어든다. 2025년에는 15조2000억원으로 5조원 정도 더 줄어든 뒤 2026년에는 9조4000억원으로 크게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춘숙 의원은 “2026년 적립금 9조4000억원은 정확히 한 달 분 급여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적립금이 (급여비 기준) 한 달 치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은 재정이 대단히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이라며 “의료기관이 청구한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건보공단이 (급여비 기준) 최소 한두 달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수지 악화의 원인으로는 우선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가 꼽힌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보험금을 타가는 노인들이 늘어났다. 건보공단은 “우리나라는 2025년에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며 “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급여비 증가가 둔화하였으나 고령화 및 만성·중증질환 증가, 의료이용 회복 등으로 급여비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도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해마다 3조~4조원대 흑자를 내던 건강보험 수지는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작된 2017년부터 급속히 악화됐다. 2012년부터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까지 연평균 건강보험 지출증가율은 9.0%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9년의 경우 지출증가율이 13.8%로 급등했다.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병원 방문이 크게 줄어들면서 지난해와 올해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으나, 일상이 회복되면서 다시 적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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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누적적자는 2060년에는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2020~2060 건강보험 장기재정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건강보험 누적수지는 2029년에 적자로 전환되고 2030년에는 31조원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후 누적적자는 2040년 678조원, 2050년 2518조원, 2060년 5765조원으로 누적적자가 급증한다. 이 보고서는 2060년 명목 GDP를 6014조원으로 가정했다.

이 때문에 직장인 건강보험료율의 인상 압박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케어 시작 당시인 2017년 6.12%였던 직장가입자 건강보험료율은 올해 6.99%로 올랐다. 내년에 처음으로 7%대(7.09%)로 올라서는 직장인 건강보험료율은 해마다 상승해 이르면 2027년에는 법정 상한선인 8%대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료는 급여에서 원천징수하는 준조세 성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건강보험 수지악화에 따른 부담을 결국 국민 개개인이 지는 구조다.

상황이 이런 만큼 지난 13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건강보험 재정적자가 핫이슈였다. 여당은 문재인 케어가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초래해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지출이 2017년 57조원에서 지난해 77조6000억 원으로 증가했고 2019년에는 2조8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혜택이 늘어나는 것처럼 하면서 (국민에게) 건강보험료 인상을 떠넘겼다”고 말했다.

이에 야당은 저소득층의 의료혜택이 늘어나는 만큼 문재인 케어를 폐지해선 안 된다고 맞섰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격이 비싸서 초음파와 자기공명영상(MRI) 진료를 받지 못했던 이들이 (문재인 케어로) 적정 진료를 받고 있다”며 “전 국민이 혜택을 보는 문재인 케어를 없앤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재정위기가 가시화한 만큼 적정 보험료율 수준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료를 더 받을 것인지, 아니면 의료이용의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축소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향후 재정관리 방식에 대해서도 조율이 필요하다. 올해 말로 일몰이 예정된 국고지원을 영구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서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는 법규정이 올해로 일몰한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국민혈세로 보충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당연도 예상 지출액에 따라 수입 규모를 결정하는 양출제입 방식으로는 국민부담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건강보험을 국가기금으로 두고 외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 총지출의 14% 안팎, 보건복지 지출의 40% 안팎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국회나 재정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얘기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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