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국인의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그동안 외국인은 현지 은행을 통해 대출받은 자금을 불법 반입해 고가의 주택을 취득하거나 주택을 수십 채 보유해도 현황 파악이 어려워 중과세를 적용받지 않았다. 그 바람에 ‘내국인 역차별’ 논란이 있었다.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투기가 의심되는 외국인 거래를 조사한 ‘공정한 부동산 시장 조성을 위한 외국인 주택투기 기획조사 결과 및 대응 방안’을 최근 발표했다. 밢표에 따르면 외국인의 주택매수는 전반적으로 부동산 거래 침체기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외국인 주택매수 비율은 2017년 0.64%에서 2019년 0.83%, 2022년 1.21% 등이었다.

외국인도 주택담보대출 시 내국인과 동일하게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대출규제가 적용됐지만, 본국 은행을 통한 대출이나 현금을 반입할 경우 상대적으로 자금 확보가 용이해 논란이 제기됐다. 서울에서 15억원 이상 주택을 살 때 주택담보대출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해 한 중국인은 강남구 타워팰리스 펜트하우스를 89억원에 사들이며 전액 중국 현지은행 대출을 받은 사례도 있다.

외국인들의 국내 부동산 매입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외국인들의 국내 부동산 매입실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이번 기획조사는 집값 상승으로 외국인 주택 매수가 급증한 2020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주택거래 2만38건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중 외국인 간 직거래와 높은 현금지급 비율, 임대 목적의 대량 매입 등 일정 기준에 따라 이상거래 1145건을 추려냈다. 이 중 411건의 거래에서 모두 567건의 위법 의심 행위가 적발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위법의심 행위 주요 유형은 6가지인데, 계약일 거짓 신고와 소명자료 미제출이 273건으로 가장 많았다. 해외자금 불법 반입(1만 달러가 넘는 현금을 들여오면서 신고하지 않거나 환치기한 경우)이 121건, 편법증여와 소명자료 미제출이 85건, 무자격 비자 임대업이 57건, 대출용도 외 유용이 22건, 명의신탁과 업무상 횡령 9건으로 각각 집계됐다.

50대 외국인 A씨는 서울 고급아파트를 42억원에 구입하면서 8억4000만원을 외국에서 반입했다. A씨는 수차례 외국을 오가며 이 돈을 반입했다고 주장했지만 외화반입 신고기록이 없었다. 신고의무가 없는 반입한도는 하루 1만 달러인데, 코로나19 와중에 70차례나 오가며 돈을 들여왔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정황상 환치기를 통한 불법 반입이 의심돼 조사받고 있다.

외국인 B씨는 경남 일대 아파트와 다세대주택 19채를 16억원에 매수하면서 6억원의 자금출처에 대해 소득증빙 등 소명이 일절 없었다. 외국인 C씨는 서울 아파트를 38억원에 구입하면서 거래대금 전부를 한국인 배우자가 대표로 있는 법인으로부터 대여받았다. 해당 법인은 대여금을 C씨에게 지급하지 않고 매도인에게 직접 이체해 편법증여를 의심받고 있다.

외국인 D씨는 한국인 아내와 함께 서울 단독주택을 7억6000만원에 매수하면서 개인사업자대출로 매수자금 일부를 조달해 편법대출을 의심받고 있다. 방문동거 비자(F1)로 체류하는 외국인 E씨는 경기도 아파트 3채를 4억1000만원에 매수한 뒤 월세를 받아 무자격 임대사업에 대한 조사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위법의심 행위 567건을 국적별로 분석한 결과 중국인이 314건(55.4%)으로 가장 많았다. 미국인 104건(18.3%), 캐나다인 35건(6.2%) 순이다. 이들의 매수지역으로는 경기도가 185건(32.6%)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171건(30.2%), 인천 65건(11.5%) 순이다. 수도권에서 적발된 위법의심 행위가 421건으로 74.2%를 차지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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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의심행위 567건은 법무부·관세청·경찰청·국세청·금융위원회·지방자치단체 등 관계기관에 통보됐다. 각 기관은 범죄수사와 탈세·대출 분석, 과태료 처분 등의 후속 조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의 국적별 거주현황과 위법행위 유형 등을 분석해 향후 외국인의 투기성 부동산거래 조사를 위한 이상거래 선별기준을 고도화할 계획”이라며 “위법의심 행위 중 해외자금 불법 반입에 대해서는 국토부와 관세청이 공조체계를 구축해 필요시 합동단속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자금 불법 반입 단속을 강화하는 등 외국인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도 내놨다. 이를 위해 국토부와 관세청은 상시 공조체계를 구축하고 외국인의 주택 자금조달계획 분석을 통해 선별한 이상거래 자료를 관세청과 반기별로 공유하기로 했다. 두 기관은 이달 중 정보공유 및 상시 공조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 국토부는 또 법무부·복지부(건강보험공단) 등이 보유한 외국인 세대구성 관련 자료를 과세당국과 공유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다주택 외국인의 세대정보를 면밀히 확인하고 취득세 중과 등 과세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외국인의 투기성 거래에 대응하기 위해 시·도지사 등이 외국인 등의 대상 용도(주택이 포함된 토지 등)를 정해 거래허가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을 추진한다. 임대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외국인 체류자격이 불명확한 문제도 있는 탓에 임대사업자 등록이 가능한 비자 종류를 명확하게 하는 내용의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 개정도 추진한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임대사업자 등록 가능 비자는 재외동포(F4), 영주(F5), 결혼이민(F6), 거주(F2) 일부로 제한된다.

외국인 부동산거래 관련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도 강화된다. 부동산거래신고법령 개정을 통해 외국인등록(국내거소신고) 대상자에 대해서는 부동산 거래신고시 외국인 등록(국내거소신고) 사실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부동산 매수 후 해외로 출국하는 외국인에 대한 조사 공백을 막기 위해서는 거래신고시 국내 ‘위탁관리인’을 지정 및 신고(변경 포함)하도록 하기로 했다.

외국인 주택 보유통계도 신설된다. 국가통계 승인을 위한 통계청 협의를 거쳐 내년 1분기 공표를 목표로 한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부동산 거래 불법행위는 엄정하게 관리한다는 원칙 아래 국민의 주거 안정을 침해하는 일부 외국인의 투기행위에 대해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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