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에 적용하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내년에도 올해처럼 시세의 평균 71.5%로 공시가를 책정한다는 뜻이다. 또 문재인 정부가 90%로 설정한 공시가격 현실화율 목표치를 당장 조정하진 않겠지만, 1년 유예기간을 두고 80%로 낮추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서울 서초구 한국부동산원 강남지사에서 부동산 공시가 현실화계획 관련 공청회를 열고 ‘공시가 현실화 수정·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공시가 현실화율을 올해와 같은 71.5%(공동주택 기준)로 유지하는 방안을 사실상 확정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집값과 공시가 현실화율이 오르고, 세율인상까지 영향을 미쳐 보유세 등 국민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같은 불확실한 시장상황 탓에 현 시점에서 현실화 계획 수정안을 확정하기 어렵다”며 기존 계획을 1년 유예하는 것을 최종 의견으로 제시했다. 국토부가 지난 6월 조세재정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발주한 만큼 이 제안을 받아들일 공산이 크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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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재정연구원은 이와 함께 현실화율 목표치를 90%에서 80%로 낮추고 달성 시기도 기존 2030~2035년에서 2035~2040년으로 늦추는 안을 제시했다. 공시가 현실화율을 지나치게 높이면 집값 급락기에 공시가와 시세 간 역전 현상이 빈번히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토부는 내년에 올해 수준으로 현실화율을 동결한 뒤 최종 목표치와 달성 시기를 늦출 것으로 예상된다. 송경호 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실화 목표치 하향 조정 등을 검토했으나 지역별로 집값 하락 편차가 커 현실화 계획을 당장 일괄적으로 개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시세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공시가 현실화 계획을 재검토하는 공약을 내걸었고, 국토부도 발 빠르게 개선안 준비에 착수했다. 지난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가 평균 19.1% 오른 데 이어 올해도 17.2%나 상승하면서 주택 보유세와 건강보험료 인상 등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및 건강보험료와 기초연금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까닭에 국민 세부담으로 직결된다. 집값 하락세가 확산하는 가운데 공시가 현실화율이 동결됨에 따라 내년 주택 보유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병탁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 팀장에 따르면 공시가 현실화율을 동결할 경우 내년도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112㎡의 보유세는 종전 2541만원에서 2444만원으로 최소 100만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가 공시가 현실화 계획을 전면 수술하기로 한 것은 공시가 인상속도를 늦춰 국민들의 과도한 세금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현행 계획은 목표 현실화율(90%)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탓에 중저가 주택을 보유한 서민층이나 취약계층까지 ‘세금폭탄’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이날 열린 공청회에서 공시가 현실화율 목표치를 90%에서 80%로 낮추는 방안이 공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세재정연구원이 1년 유예방안을 제시했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기존 로드맵 개편을 미룰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집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장기계획인 현실화 로드맵을 섣불리 확정하기 어려워 좀 더 시장추이를 지켜보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핵심 내용은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와 같이 유지한다는 것이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 현실화율은 ▲시세 9억원 미만 69.4% ▲9억~15억원 미만 69.2% ▲15억원 이상 81.2%다. 단독주택은 ▲9억원 미만 54.1% ▲9억~15억원 미만 60.8% ▲15억원 이상 67.4%로 평균 58.1%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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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2020년 11월 내놓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그대로 이행하게 되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평균 현실화율은 올해 71.5%에서 내년엔 72.7%로, 2024년 74.6%로 계속 오르게 된다. 해마다 공시가 현실화율이 2~3%포인트 높아져 땅값·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내려도 공시가 인상에 따라 세금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령 아파트 시세가 10억원에서 변하지 않아도 세금부과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가 7억2700만원, 7억4600만원 등으로 계속 오른다. 송 부연구위원은 “집값 하락세가 본격화하면서 공시가가 실거래가를 뛰어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만큼 공시가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세재정연구원은 현실화율 목표치를 90%에서 8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되 집값 급락 등 불안정한 시장 상황을 고려해 현실화계획 개편을 내년 이후로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현실화율 목표 도달 시기도 공동주택은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단독주택은 2035년에서 2040년으로 5년씩 늦추는 방안을 내놨다. 이렇게 할 경우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 연평균 상승률은 현재 2.31%에서 0.65%로 대폭 낮아진다.

내년에 공시가 현실화율이 올해 수준으로 유지되면 상당수 유주택자의 세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애초 공시가 현실화율 로드맵대로라면 내년 현실화율은 72.7%로, 올해보다 1%포인트 넘게 오른다. 우 팀장에 따르면 60세 1주택자가 서울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114㎡를 7년 보유한 경우, 내년 재산세와 종부세 총합은 당초 2194만원에서 2108만원으로 90만원가량 줄어든다. 현재 시세(48억원)에 공시가 현실화율(71.5%)을 적용한 결과다. 공시가 산정 기준일인 내년 1월1일 시세가 지금보다 내려가면 재산세는 이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 서울 서대문구 DMC래미안e편한세상(공시가 10억5140만원) 전용 84㎡는 252만원에서 248만원으로 경감된다.

국토부는 공시가 현실화율 동결과 함께 경제위기나 부동산 가격 급등 같은 충격이 있을 때 현실화 계획의 적용을 일시 유예하는 방안도 도입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공청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 적용할 공시가 현실화율 이행계획을 조만간 발표한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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