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原乳)가격이 오르면서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 가시화하고 있다. 낙농진흥회가 이달 초 원유 기본가격 인상 폭을 결정함에 따라 주요 유업체가 흰우유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빵과 아이스크림, 커피, 과자 등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는 제품들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르게 됐기 때문이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유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원유가격 인상에 따라 오는 17일부터 우유 제품 출고가격을 평균 6% 인상한다. 이에 따라 서울우유 대표제품인 흰우유 1ℓ 가격은 6.6% 오른다. 대형마트 기준 2710원이던 소비자가격은 2800원 후반대로 상승한다. 유가공품 오름 폭은 더 크다. 서울우유 생크림과 버터의 출고가격은 각각 10%, 7% 오른다. 발효유 제품인 ‘비요뜨’ 출고가도 5%대 인상한다. 서울우유의 한 관계자는 “낙농진흥회 원유 기본가격 인상 결정과 누적된 원부자재 가격 상승 부담, 물류비, 제조경비 등의 증가로 불가피하게 인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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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도 같은 날 유제품 7종 가격을 평균 14% 인상한다고 밝혔다. 대형마트·편의점 등 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순차 적용된다. 이번 인상에 따라 편의점 기준 바나나맛우유(240㎖) 가격은 기존 1500원에서 1700원으로 13.3% 오른다. 이밖에 굿모닝우유(8%), 요플레 오리지널(16%) 등의 가격도 인상된다. 빙그레의 한 관계자는 “원유를 비롯한 각종 원부자재 가격과 유가 등 제조원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일유업 역시 같은 날 흰 우유(900㎖) 가격을 2610원에서 2860원으로 9.6% 인상한다. 초코우유와 딸기우유 출고가는 10%가량 오른다. 남양유업은 출고가를 약 8.7% 올려 대형마트 기준 ‘맛있는우유GT’(900㎖) 가격을 2650원에서 2880원으로 조정했다. 동원F&B는 판매가격 기준으로 우유제품 가격을 평균 5% 인상한다. ‘대니쉬 더(The) 건강한 우유’(900㎖) 가격은 2240원에서 2490원으로 11% 오른다.

유업체의 이번 우유가격 인상은 올해 원유 기본가격이 사상 최대폭으로 오르는 등 생산원가가 상승한 데 기인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앞서 지난 3일 낙농가(생산자)와 유업체(수요자) 등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이사회에서 원유가격 최종 협상을 통해 원유 기본가격을 ℓ당 49원 인상키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음용유(흰우유)용 원유가격은 기존 947원에서 996원으로 약 5.2% 오른다.

낙농가와 유업계는 해마다 6월부터 원유 가격 협상에 들어간 뒤 8월부터 새 가격을 적용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원유가격 인상이 늦게 결정된 점을 고려해 ℓ당 3원씩 지원금을 추가해 사실상 ℓ당 52원 인상했다. 이번 원유가격 인상폭은 ℓ당 49원으로 2013년 정부의 ‘생산비 연동제’ 도입 이래 사상 최대 수준이다. 지난해 원유 기본가격이 ℓ당 926원에서 947원으로 21원(2.3%) 인상된 것보다 2배 이상 오른 셈이다. 김정욱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지난 4일 낙농진흥회 이사회 결과 브리핑에서 “여러 식품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흰우유 가격은 덜 인상하고 가공제품은 추가 인상을 자제해 인상 폭을 최소화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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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음용유용 원유가격 인상으로 유업체의 흰우유 제품 가격만 오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흰우유를 직접 원·부재료로 사용하는 빵과 커피 음료, 아이스크림 등도 생산원가가 비싸지면서 먹거리 물가 오름세는 연쇄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유업체들이 흰우유 외에 가격인상 요인이 낮은 발효유·탈지분유·치즈 등 가공유제품 가격도 연내 서둘러 인상에 나서면서 밀크플레이션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더군다나 라떼 제품군의 경우에는 우유제품이 사용되면서 가격인상 여지가 큰 상황인 만큼 프랜차이즈 커피업계의 제품 가격에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유업계가 용도별 차등가격제로 가격인하 요인이 생긴 가공유와 관련 유제품도 재빠르게 인상하면서 ‘얄팍수’를 쓴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부터 가공유용 원유 기본가격은 정부가 낙농제도 개편차원에서 도입한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에 따라 ℓ당 947원에서 800원으로 147원(약 15.5%)이나 대폭 낮아지게 된다. 이 때문에 흰우유와 달리 원가가 싸진 가공유를 활용한 유제품 가격은 인하하거나 다른 비용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동결에 그쳐야 했다.

그럼에도 유업체들은 가공유제품 가격을 서둘러 크게 올림으로써 흰우유 가격인상 최소화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는 꼼수를 부린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서울우유는 이번 흰우유 제품가격 인상에 앞서 9월부터 토핑 요구르트 제품 ‘비요뜨’ 6종의 용량을 5g씩 줄이면서 사실상 제품가격을 인상한데 이어 지난달 체다치즈 200g, 400g 등 40여종의 가공유제품 출고가를 20% 먼저 올렸다. 남양유업은 이달부터 대리점 출고가 기준 ‘맛있는 두유GT’ 등 두유제품은 평균 14%, ‘불가리스’ 등 발효유는 평균 10%, 치즈는 평균 15% 인상했다. 프렌치카페와 FC로스터리 등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컵커피 가격도 평균 7~12% 올렸다.

매일유업도 지난 6월 가공유제품 ‘우유속에’ 시리즈 3종 출고가를 평균 10% 올린데 이어 이달부터 요구르트류 가격을 평균 15~25% 인상했다. 스타벅스의 경우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원유가격 인상을 이유로 지난해 10월부터 흰우유 가격을 인상한지 불과 3개월 만인 올 1월부터 우유가 들어가는 카페라떼를 비롯한 46종 음료가격을 최대 400원 올린 바 있다. 파리바게뜨도 올초 식빵·케이크 등 66종 가격을 평균 6.7% 인상했다.

유업체들은 그동안 비싼 음용유용 원유를 가공유로 전환 생산·판매함에 따른 영업손실과 최근 원부자재 가격 및 물류·에너지 비용 상승, 환율 상승 등으로 생산원가 부담이 오랫동안 누적됐다며 가공유와 관련 유제품가격도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년부터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시행되긴 하지만 가공유와 기타 유제품 가격도 계속 오르는 등 당장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원료로 하는 빵·케이크·파스타·아이스크림 등 연관 먹거리 가격도 줄줄이 올라 소비자 물가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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