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커머스 업체인 쿠팡이 3분기에 처음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2014년 ‘돈먹는 하마’ 로켓배송 서비스를 선보인지 8년 만이다.

쿠팡이 최근 공시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매출액은 51억133만4000달러(약 6조8383억원, 환율 1340.5원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46억4470만 달러)보다 9.8% 증가했다. 영업이익 7742만 달러(1037억원), 당기순이익은 9067만 달러(1215억원)의 흑자를 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분기 기준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같은 기간의 영업손실과 견줘 4700억원 가까이 개선된 호실적이다. 지난해 3분기 영업손실은 3억1511만 달러, 순손실은 3억2397만 달러였다. 조정 EBITDA(세금·이자·감가상각전 이익)는 1억9492만 달러로 2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200%가량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2억743만 달러) 손실을 낸 점을 고려하면 수익성이 대폭 개선됐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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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쿠팡의 첫 흑자전환은 미국 아마존, 중국 알리바바 등 글로벌 e커머스 기업들이 부진의 늪에 빠진 와중에 거둔 성과인 만큼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은 1분기 7년 만에 처음으로 38억 달러에 이르는 순손실을 냈다.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혼란으로 인한 비용 증가, 온라인 쇼핑시장의 성장 둔화 등 악재가 겹친 탓이다. 알리바바도 2022회계연도 1분기(4~6월) 매출이 전년보다 0.09% 감소했다. 알리바바의 분기매출이 줄어든 것은 2014년 뉴욕증시 상장 이후 처음이다. 반면 쿠팡의 활성고객(제품을 한 번이라도 구매한 고객)은 1799만2000명으로 7%, 1인당 고객 매출은 38만원으로 19% 증가했다.

2010년 위메프 등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로 첫발을 내디딘 쿠팡은 2014년 ‘로켓배송’이라는 e커머스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유통기업으로 변모했다.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날 받는 배송서비스를 선보여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유통업은 물류센터와 수송네트워크 등 자본과 인력이 집중되는 사업이다. 쿠팡이 출사표를 던진 시점에 e커머스 시장은 대기업들이 출혈경쟁을 펼치는 각축장이었다.

당시 영세업체에 불과했던 쿠팡은 미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한 성장전략을 채택했다.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처럼 미국의 대형 벤처캐피털(VC·창업투자회사)로부터 거액의 투자금을 끌어들여 이를 발판으로 시장점유율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2014년 이후 쿠팡의 주요 투자자는 세쿼이아 캐피탈(1억 달러), 블랙록(3억 달러) 등 실리콘밸리의 큰 손들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을 로켓배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출한 비용은 엄청났다. 쿠팡은 할인쿠폰 발행, 세일행사 등 마케팅에 주력했다. 쿠팡의 배송직원들은 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까닭에 경쟁사보다 보수도 좋아야 했다. 이렇다 보니 쿠팡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도 ‘실제로 버는 돈’은 언제나 적을 수밖에 없었다. 쿠팡은 2018년까지 마진율이 5%대에 불과했다. 통상 유통업체들의 마진율은 10~20%대다. 여기에다 해마다 수천억원대의 신규 물류센터 투자를 계속하다 보니 영업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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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로켓배송을 시작한 이후 낸 영업손실 규모는 모두 6조원을 넘어선다. “다 계획된 적자일 뿐”이라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의 호언은 ‘비웃음’의 대상이 됐다. 시장에서는 쿠팡의 도전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쿠팡은 생존을 위해 유동성이 완전히 바닥나기 전에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야 했다. 자본금을 모두 까먹고 2610억원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던 쿠팡은 2018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0억 달러의 투자금을 극적으로 유치하며 기사회생했고, 지난해 3월에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해 50억 달러를 확보하며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경기도 이천의 쿠팡 물류센터에 불이 나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방관이 순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쿠팡 등 e커머스 업체들의 물류센터 안전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고질적 적자 문제, 지난해 이후 얼어붙기 시작한 투자자들의 심리가 쿠팡 주가의 발목을 잡았다. 기업공개(IPO) 당시 48.47달러였던 주가는 11일 종가 기준 19.97달러로 반토막도 안 되는 상태다. 창업 이래 쌓인 천문학적 적자에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도 수성하지 못했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쿠팡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13%로 네이버(17%), 신세계그룹(15%)에 이어 3위다. 2014년 1215억원으로 시작한 쿠팡의 적자는 지난해 1조8040억원까지 불어났다. 8년간 누적적자는 6조444억원에 달했다. “사업모델에 지속성이 없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 배경이다.

그런데도 쿠팡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구축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그 후엔 스스로 굴러가며 더 큰 수익을 창출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쿠팡의 3분기 성과는 8년간 물류센터를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배송인력을 직고용하는 과정에서 적자가 쌓이는 것을 감내한 결과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e커머스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자동화 물류네트워크만으로 저절로 돌아가는 ‘플라이휠’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번 실적은 쿠팡만의 혁신적 물류네트워크가 성과를 낼 것이란 경영진의 믿음이 결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쿠팡은 올초부터 달라진 숫자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쿠팡의 핵심사업인 로켓배송과 로켓프레시 등 제품 커머스 부문의 조정 EBITDA가 1분기에 흑자로 돌아섰다. ‘쿠팡식 로켓배송 물류네트워크’가 증명됐다는 게 회사 측 분석이다. 김 의장은 콘퍼런스콜에서 자동화 기술에 기반한 물류네트워크를 실적개선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수요를 예측한 결과 신선식품 재고손실이 전년보다 50% 줄었다”며 “7년간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기술, 풀필먼트 인프라, 라스트마일(최종 배송단계) 물류 등을 통합한 결과 고객과 상품, 서비스와 가격 사이에 존재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양자택일 관계)를 깰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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