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부터 120만 여명에 이르는 올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에게 고지서를 발송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보다 종부세 과세인원 4배, 총세액 규모는 10배 이상 급증해 ‘극소수 부자에게 물리는 부유세’ 성격으로 도입된 종부세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특히 투기목적이 없는 실수요자들도 적지 않은 종부세를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종부세 과세대상은 2017년 33만명에서 올해 122만명으로 4배 가까이 늘어났다. 국내 전체 주택 보유자(1508만9000명)의 8.1%가 종부세 과세대상이 되는 셈이다. 2005년 종부세 제도 도입 후 납부 대상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급 종부세’ 평가를 받았던 지난해(약 93만1000명)와 비교해도 31%(28만9000명) 증가한 수치다. 총세액 규모 역시 2017년 4000억원에서 올해 4조1000억원으로 10배 이상 대폭 늘어났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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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는 2005년 6월 노무현 정부가 도입했다. 당시 과세대상은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이었다. 공시가격 시세 반영률을 적용하면 서울 평균 아파트값의 3배가 돼야 종부세 고지대상이 됐다. 종부세가 부자세로 불린 이유다. 현행 종부세법은 인별로 소유한 전국 주택의 공시가격 합계액이 6억원을 초과할 경우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단 1가구 1주택자는 기준점이 11억원이고 부부 공동명의일 경우 한 사람당 6억원씩 모두 12억원까지 공제가 된다.

이중 1가구 1주택자는 23만명으로 전체 주택분 종부세 납부 예상자(122만명)의 18.8%에 달했다. 종부세를 내는 1가구 1주택자는 문재인 정부 집권 초인 2017년만 해도 3만6000명에 그쳤지만 5년 새 6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투기목적이 없는 실수요자지만 종부세를 내야 하는 이들이 급증한 것이다. 1가구 1주택자가 부담하는 종부세액도 151억원에서 2498억원으로 16배 이상 증가했다. 1인당 108만6000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더욱이 공시지가 12억원이 넘는 주택을 가진 30대 미만, 즉 20대 이하인 ‘금수저’도 1933명이나 된다. 29세 안에 시세가 17억원 상당(공시지가 현실화율 70% 적용시)의 주택을 마련했다는 얘기다. 1년 전 1284명에서 50.5%나 급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만 해도 12억원 초과 주택을 보유한 30세 미만은 287명에 그쳤다. 이 수가 불과 5년 사이에 7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30대 미만으로 공시가 12억원 넘는 주택을 보유한 경우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보다는 증여·상속이 많은 ‘금수저’일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를 중과하고 막대한 종부세를 부과하다 보니 다주택자들이 주택을 매도하는 대신 자식에게 증여하는 방식을 선택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번 정부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법정 하한인 60%로 내렸고 일시적 2주택과 상속주택, 지방 저가주택은 주택 수에서 제외해 1가구 1주택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을 도입해 세액을 줄였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로 9조원대가 될 뻔했던 종부세가 4조원대로 줄고 특례 도입으로 3만7000명의 세부담이 줄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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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종부세 과세대상과 세부담이 대폭 늘어난 것은 가파른 부동산가격 상승 속에 2019년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투기억제 목적으로 주택수에 따라 2~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2배 이상의 높은 세율(최대 6%)을 적용하는 다주택자 중과제도를 도입한 게 주요인으로 꼽힌다. 주택 공시가격을 과세표준으로 계산할 때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도 2019년 85%에서 2022년 100%로 해마다 5%포인트 올라 세부담이 커졌다는 게 기재부 측 설명이다. 여기에다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통화긴축이 시작되기 전인 올해 초 부동산 공시가격이 급등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재산세와 종부세 등 부동산 보유세는 해마다 1월1일 기준으로 산정된 공시가격을 토대로 과세표준을 정한다.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보다 17.2%나 급등했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올해 7월 국민 세부담의 형평성 제고와 부동산 세제 정상화를 위한 주택분 종부세 세율 및 세부담 상한조정 방안을 담은 ‘2022년 세제개편안’을 발표하고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조정대상지역(규제대상지역)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세율을 폐지하고, 적용 세율도 0.5~2.7%로 낮춘다. 다주택자 등의 종부세 기본공제금액도 현행 6억원에서 9억원(내년부터 적용)으로 높인다. 공시가격 합산 9억원 초과주택 보유자부터 종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1가구 1주택자의 기본공제금액은 현행 11억원에서 12억원으로 확대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세제개편안에 대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이라며 반대입장을 보여 개편안 심사가 진통을 겪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주택분 종부세 과세 인원이 100만명을 넘어서고 지난해 결정세액과 비슷한 규모의 종부세 고지가 이뤄지면서 집값 하락 상황과 맞물린 조세저항도 예상된다. 지난해 종부세가 과도하다며 납세자들이 수정을 요구한 경정청구 건수는 전년보다 79.1% 급증한 1481건이었다. 경정청구를 통한 불복뿐 아니라 단체 취소소송 등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집값이 오르고 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일부 지역에서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뛰어넘는 역전현상도 나타나고 있을 만큼 집값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급상승한 공시가격에 맞춰 종부세를 내야 한다는 현실을 납세자들이 받아들이긴 어려운 만큼 조세저항이 한층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보다 더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로드맵 시행 이전 수준으로 회귀해 보유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2일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를 연다. 지난 4일에 이은 2차 공청회다.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급등하기 시작한 현실화율을 되돌려 내년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고 내년 이후 로드맵은 시장상황을 봐가며 정하기 위해 결정을 1년 이상 유예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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