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 말레이시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부가 건설경기 부양정책을 뒷받침할 요량으로 철근가격 상한제를 전격 실시했다. 철근가격 안정으로 건설 붐을 일으킴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는 제9차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철근가격 상한제 시행의 결과는 참담했다. 철근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시장질서는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가격 상승은 철근 제조업체들이 내수용 공급을 외면한 채 물건 빼돌리기와 수출에만 열을 올리며 나타난 현상이었다. 시장질서 붕괴는 거래 당사자들이 정상적인 과정을 피
북한의 우리국민 참살 및 시신훼손 사건을 둘러싼 논쟁이 짜증을 돋우는 요즘이다. 특히 가증스러운 쪽은 억지논리를 들이대며 사실상 북한 무죄론을 펼치려는 이들이다.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월북했다는 것을 확정된 사실인 양 강조한다. 피해자에게 월북 프레임을 씌워 북한 측의 만행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억지 논리를 개발 또는 확산시키는 데는 정치인뿐 아니라 학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주된 논거는 우리 국민을 참살한 북한군이 그들의 규정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에서 코로나19 방역 강화조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한 저명 대학교수가 대통령에게 말했다. ‘국민’ 대신 ‘시민’이란 말을 쓰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모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통령의 외골수식 사고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런 말을 했을까 싶었다.사실 문민화 이후 탄생한 대통령 중 박 대통령만큼 국민이란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던 이도 없다. 과문 탓일지 모르나 박 대통령에게서 시민이란 말을 들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물론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한 호칭은 예외다. 하긴 다른 대통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른 것도 아니었다. 위의
소련이 붕괴된 지 오래지 않은 시점에 취재차 러시아에 간 적이 있다. 1994년 5월 하순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 느꼈던 충격들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첫 번째 충격을 안겨준 것은 막 도착한 모스크바공항의 화장실 모습이었다. 내부가 낡아 퀴퀴한 냄새가 나는데다 일부 좌변기의 경우 중간 덮개가 떨어져 나간 것도 있었다. 젊은 현지 주부의 묵은 때에 찌든 유모차도 눈길을 사로잡았다.골목시장에 가보니 상점 진열대엔 빈 공간이 더 많았다. 과자 코너에 한글 상표가 선명한 ‘새우깡’ 한 봉지가 덩그러니 놓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
문재인 정부의 평등주의 정책 논리가 큰 암초를 만났다. 이미 교육은 포기했고, 부동산 정책은 중간이라도 가면 좋겠다(조기숙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는 평가가 진보 진영 내부에서 나오고 있을 정도다. 포기했다는 교육과 중간도 못 간다는 뉘앙스의 부동산 정책은 하나같이 결과적 평등 추구의 산물들이다.‘기회의 평등’ 주장과 달리 사실상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은 마침내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한 채 결과적 평등만을 추구하다가 벌어졌다. 흥분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새삼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드러나기로 치면 논란의 핵심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사회활동을 벌여온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부정 여부다. 이 일로 시민단체 전반에 대한 도덕성 시비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논란의 한 가운데에는 정의연을 이끌어온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리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그가 과연 회계부정을 통해, 그리고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서커스단의 곰처럼 이용해 사익을 취했는지에 모아져 있다.사실 이 일은 내재된 심각성에 비해 그리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진영 논리에 구
초콜릿은 ‘달콤한 독’으로 불리곤 한다. 정제된 설탕의 단맛이 거칠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고도 진한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는 순간 우리는 안락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 중엔 초콜릿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매력에 마냥 빠져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 몸에 비만이라는 치명적 해악을 가져다줄 수 있어서이다.국가 재정이 꼭 그와 같다. 쓸 때는 좋지만, 통제 없이 마구 사용한다면 반드시 사달이 생긴다. 우리 국가 재정엔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 우한 폐렴(코로나19)이라는 감염병 사태
모든 집단은 배타성과 통합성을 동시에 지닌다. 밖으로는 배타적이면서 안으로는 통합을 지향한다. 이를 대표하는 감정이 애국심이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들어가면 한 나라 안에서도 무수한 집단들이 공존한다. 그들 각 집단은 선택적 이익을 기반으로 자연스레 구성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들 집단은 저마다 배타성과 통합성이란 모순된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사회 갈등이다. 그 같은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에게 주어진 기본 책무다.국가 지도자들 스스로도 예외 없이 갈등 조정과 통합을 강조한다
고등학생 시절 ‘데카메론’을 읽고 의외의 내용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페스트 감염을 피하려 밀폐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돌아가며 한 이야기를 엮은 것이라곤 하지만 그 내용 일부가 너무 야하다 싶었다. 성적(性的) 호기심이 넘쳐나던 그 시절, 또래들과 골방에 모여앉아 킬킬대며 주고받았던 음담패설도 작품 속의 그것보다는 점잖았던 것 같다. 해서, 문학사적 또는 문화사적 가치는 몰라도 그 내용 만큼은 그리 권장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서는 가끔 이 작품이 생각나곤 한다. 불쑥 새
정부가 기획한 우한 교민 이송계획이 계획대로 진행돼 700여명이 무사히 국내로 들어왔다. 정부가 잘 해서가 아니었다. 오롯이 수용시설이 위치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 주민들의 시민의식이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한 덕분이었다.극한상황에서 발현된 시민들의 집단지성은 교민들의 도착 당일 감동적인 급반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수용 반대’ 구호는 환영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수용시설 입구에는 ‘힘내라’라는 글씨가 적힌 손팻말이 등장했다.그렇다고 해서 아산·진천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 주민은 병마를 피해 찾아
새로운 10년을 여는 2020년 새해가 시작됐다. ‘꺾어진’ 해라고 특별히 다를 게 무엇이냐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이럴 때면 일반적 정서에는 각별함이 배어들기 마련이다.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그럴 것 같다. 막 지나간 시간들이 유별난 어려움의 연속이었다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때 마침 우리 경제는 변화된 내부 환경을 마주하게 된다. 새해 시작과 함께 소위 경제통 총리를 맞아들이게 된 것이다. 변수가 있긴 하지만, 누가 되든 이번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총리직은 경제통에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
경제학의 오래된 이론 중에 파레토의 법칙이란 게 있다. 80대 20 법칙으로 통칭되는 이 법칙은 통계학적 이론으로서 부의 불평등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콩을 재배하다가 이 법칙을 발견했다. 요지는 잘 여문 20%의 콩깍지가 전체 콩 수확량의 80%를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 법칙은 신기하리만큼 사회 현상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작동된다. 특별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쟁사회에서는 상위 20%의 부자들이 전체 사회의 부 가운데 80%를 과점하게 된다는 것
매달 중순 경 통계청의 고용동향 발표 때마다 매체들이 취업자 증가폭 외에 따로 주목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60대 이상 고령층에서의 취업자 증가폭이다. 통계상 이 수치가 갖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 배경이다. 이 수치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통계상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 의미에 대한 성찰 없이 단지 수치만 강조한다면 최근의 우리 고용 상황이 실제보다 크게 좋아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통계 분식’이란 극단적 비판까지 제기되는 이유다.단순 취업자 증가폭에 대한 언론의 평가절하는 지난해부터 유
요즘 우리 경제와 관련된 담론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공포’다. 한동안 ‘R의 공포’와 ‘D의 공포’라는 말이 나돌더니 요즘 들어서는 ‘M의 공포’라는 말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이들 명칭은 각각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마이너스의 영문 이니셜을 차용해 만들어졌다.이 같은 말의 유행은 우리 경제가 그만큼 활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경기가 활기차게 돌아가는 상황이라면 이런 용어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리 만무하다. ‘공포’는 우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터라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일본은 아직도
정부가 2년 연속 증가율 9%대의 예산안을 확정했다. 올해 9.5%에 이어 내년 예산의 증가율을 9.3%로 잡은 것이다. 지난달 29일 각의를 통해 확정된 정부 예산안은 513조5000억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앞서 기자들에게 밝혔던 대로다. 홍 부총리 스스로 말했듯이 9% 초반은 최근 10여년래 가장 큰 예산 증가율이다.현 정부 들어 확연히 빨라진 예산 규모 증가의 속도는 가속도까지 붙으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 몇 년만 돌아봐도 그 증가 추세가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전년 대비 연도별 예산 증가율(본예산 기준)은
정부가 일본의 수출 규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한적이나마 주 52시간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반도체 소재 등 일부 품목의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R&D)에 나서는 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들 기업에 한해 최장 3개월 동안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정부가 이 조치를 적극 검토하게 된 배경은 지난 달 10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간담회다. 이 자리에서 주 52시간제가 연구개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기업인의 지적이 나왔던 것이다. 때가 때인지라 이 호소는 주무 부처인 고용
심리학 용어중 ‘스키마’라는 것이 있다. 골자는 ‘인지의 고정틀’ 정도로 설명될 수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앞 부분에 나오는 보아뱀 그림을 예로 들면 개념 설명이 쉬울 듯 싶다. 작품이 말해주듯 대개의 어른들은 그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중절모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연상할 수 있다. 이는 해당 그림의 모양을 두고 어른들에겐 중절모, 아이들에겐 코끼리와 보아뱀으로 인식하려는 각각의 스키마가 강하게 작용한데 따른 인지의 차이다.스키마는 각 개인이 지닌 지식 구조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쏘카’ 이재웅 대표가 모빌리티 서비스 문제를 두고 한바탕 언쟁을 벌였다. 모든 다툼엔 나름의 논리가 있는 만큼, 언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대개의 언쟁엔 양시양비론적 시각이 적용될 여지가 있기 마련이다.하지만 때론 양시양비론이 백해무익한 경우도 있다. 이번 언쟁이 그런 유에 해당한다. 언쟁 중 한쪽이 명백히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면 그 일방을 콕 찍어 나무라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건의 경우 최 위원장이 전적으로 잘못했다. 자신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몰이해가 잘못을
문재인 정부가 수소경제 띄우기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울산에서 열린 수소경제 전시행사장을 방문해 수소차 홍보 모델을 자처한 것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문 대통령의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은 유별난 측면이 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은 현대자동차가 만든 수소차를 시승해 보이는 한편 수소차 충전소 설치 문제 등에까지 세세한 관심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새해 업무보고 당시엔 수소차를 거론하며 세계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대통령이 움직이니
정부의 경제정책과 관련해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들리는 말이 공정경제다. 소득주도성장 논쟁이 주춤해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공정경제가 새로운 의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공정경제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경제정책 3축 가운데 하나다. 정권 초기엔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정책의 주축인 듯 행세했으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논란에 휩싸이면서 잊혀진 이름이 되다시피 했다. 이젠 문재인 대통령조차도 공개 석상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거의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분배론자로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진두지휘한 장하성씨가 청와대 정